날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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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 날짜 없음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누구와 함께 있고 싶어할까. 세상엔 다양한 이별이 있다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을까.
“그 극장 문 닫는대.”
최근 흥행하는 영화가 무수히 나와 간만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문득 이상한 조바심이 스쳤다. 대전에 올라온 지 5년 동안, 애정했던 공간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정말 그 순간들의 기억도 하나씩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었다. 이런 순간은 대개 오랜만에 고향에 가거나, 간만에 마음을 먹고 멀리 있는 동네를 방문할 때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어떤 책이 유명하고 좋은지 찾아보지 않는다. 무턱대고 도서관에 가서 오래 선반을 서성이다 이끌리는 책을 고르는 습관이 있다. 여느 때처럼 책을 고르려 멍하니 서 있던 중, 순간적으로 문을 닫았다던 그 극장이 떠올랐고 하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날짜 없음』이라는 제목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사건들을 생각하던 나에게 이 책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주었다.
평범한 소설일 거라 생각했지만, 1년째 잿빛 눈이 내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사랑 이야기였다. ‘눈’은 지상의 인간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을 형상화한 것이자, 단시간에 지구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눈이 쌓이듯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조여 오는 도구로서 충분한 소재였다.
“그것이 온다.” - 소설 중.
어느 날 지구에 빨간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이내 잿빛 눈으로 변하게 되면서 그 도시는 회색시라고 불린다. 햇빛을 보지 못하고 지낸 사람들에게는 창백함만 남았고, 먹을 것이 사라진 도시에서는 앙상한 해골만 남은 채 도시를 떠나는 회색인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얼음에 파묻히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루 종일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만 나는 세계에서, ‘그것이 온다’라는 소문까지 더해져 회색인들의 행렬은 끝없이 불어난다. 다만, 돌아오는 사람이나 소식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한 세상임에도 주인공인 ‘해인’과 그, 그리고 그의 반려견 ‘반’은 컨테이너 박스에 전구를 켜고 위태롭게 ‘그것’이 올지 안 올지 대화를 나누며 끝까지 회색시에 남기로, 희망을 품기로 다짐한다. 이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종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행렬에 합류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는 순간마다 서로를 붙들며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둘은 연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사실 자체가 행렬에 합류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였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한테는 서로에게 나눠 줄 이야기 같은 게 더는 없을 테니까요. 없어서 다른 걸 찾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떠난 걸 거예요.” - 소설 중.
그의 컨테이너 박스는 길을 걷다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구두닦이 가게의 컨테이너 박스였다. 그와 해인이 살면서 쌓아온 인연들이 들렀다 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의 전 애인, 여고생, 할아버지, 분식집 아주머니 등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손님의 방문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챕터로 분류되는 대신 179라는 숫자에서 출발하여 0으로 끝나는 소제목으로 구성된다.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도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너무 많아 소설 속 시간이 며칠은 지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이 숫자의 의미는 시간 중에서도 ‘분’을 뜻하는 듯하다. 그것이 오는 날의 자정이 오기 전까지 179분의 기록을 남긴 책처럼 느껴졌다. 즉, 시계가 곧 세계이며 해도 뜨지 않아 날짜를 셀 수조차 없는 ‘날짜 없음’이라는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10이라는 숫자에서는 반려견인 ‘반’을 안락사시켜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날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미루며 함께하고자 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름의 유래처럼 그의 나이의 반의 반을 살다 간 반은, 첫 만남에 해인을 반하게 했던 충직한 가족이었다.
결국 해인과 그는 점점 추워지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서로를 껴안으며 어둠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서로를 감각하기 위해 더 세게 끌어안았다. 몸이 깨질 것만 같았지만 대신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신기하게 이젠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 소설 중.
“해인 씨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늘 한 뼘 더 해인 씨를 좋아해요.” - 소설 중
소설의 마지막 문장 또한 “그것이 온다.”로 막을 내린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작가는 독자에게 그것의 정체를 확실히 알려주지 않는다. 많은 독자는 그것을 인류의 종말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듯하다.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과 정이라도 들었는지, 나는 그것이 잿빛 하늘이 사라진 다시 평화로운 내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침대에서 일어났던 도로시처럼, 그들도 갑자기 찾아온 재앙을 지나 갑자기 찾아온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보통 재난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극한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모습만 봐왔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이면에 재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써 내려간 듯하다. 결국 세상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감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이들과 어떠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서로의 소중함과 애틋함, 슬픔보다는 감사함을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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