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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악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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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166회 작성일 26-09-18 20:16

본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 S. 루이스 지음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자와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서문으로 시작하는 저자의 경고가 없었다면, 독서 후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이 인간을 빚을 때 불완전하고 모순된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저마다 이기적인 관점과 주관적인 인지를 통해 같은 세상을 다르게 수용하고 해석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무조건적으로 윤리 의식을 높이고 계명을 준수하자는 주장의 나열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선을 비틀어 표면적으로는 원로 악마가 신입 악마와 진심 어린 조언이 담긴 편지를 주고 받는 형태를 취하면서 글이 전개되고 있는데, 하나님을 ‘원수’라 지칭하고 인간을 그 원수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아군으로 포섭하기 위한 방법과 그 효과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환자를 교회에서 멀리 떼어 놓기에 가장 좋은 협력자는 논증이 아니라 전문용어란 말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과학서적 따위는 아예 읽지 못하게 하면서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럴듯하고 막연한 느낌만 심어 주는 거지. 

어쩌다 주워들은 이야기나 이런저런 쪼가리 독서에서 얻은 것들이야말로 이른바 ‘현대과학의 부단한 탐구가 성취한 결실’이라고 믿게 만들거라.”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서 머무르게 되거든.”

 

 

 

 2차 세계대전 때 쓰여진 오래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상 속 인간의 어떤 모습과도 상당히 닮아 있어 묘하게 공감이 되었다. 공통적으로 느낀 악마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본질을 흐리고 허울뿐인 껍데기에 집착하도록 혼돈을 주며 주의를 현란하게 교란시키는 것과, 또다른 하나는 현재 일상의 감사함과 소중함을 희석시키고 먼 허상과 미지의 것을 탐하도록 하는 욕심과 이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전자는 거짓을 분별해내는 지혜와 지식을 갖춰 상대의 기만에 속지 않음으로써 극복하고, 후자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오만한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고 통제해야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또다른 느낀 점은 악마가 혹은 악마와 같은 사람이 설계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만큼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판단의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금지된 지식은 실재하지 않음을 느꼈다. 물론 ‘너희는 이런 것들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 혹은 너희는 몰라도 된다.’ 라는 말은 감춰진 이면을 직시하기에 실체를 감당하기 어려운 약자를 보호하거나 교육적인 목적을 감안하면 이 말들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이득을 취하고 상대를 파멸시키는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가 우리 사회에서 꽤 빈번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 생각하지만, 인생의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서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려는 노력과 고민을 거의 안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그 정의와 경계가 상이하기에 이상적인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참 많다고 느꼈다. 이러한 현상을 목도할 때 부조리함에 분노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소 관망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보며 나의 내면이 가난해졌음을 깨닫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의 관점에서 쓰여진 낡은 편지들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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