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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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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규
댓글 0건 조회 133회 작성일 26-09-2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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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 와이너 - 

 

학부 생활이 마무리될 즈음 처음 사용했던 ChatGPT 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AI 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AI 는 5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급속도로 발전했고, 지금은 단순한 번역부터 복잡한 계산 작업까지 ChatGPT 의 도움을 받고 있다. 타자 몇 번과 짧은 대기 시간만으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그만큼 현명한 사람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도 정작 그 지식을 무엇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지식만큼이나, 어쩌면 지식보다 더 지혜를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원에서부터 사랑(philos)과 지혜(sophia)가 결합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철학(philosophy)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여러 철학자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그들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는 책이다.


 

 

“좋은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더 이상 논쟁하지 말고, 그냥 그런 사람이 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생각이 많은 편이다. 이것저것 따져보는 성격이 장점이 될 때도 있지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정작 행동해야 할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대학원 생활을 돌아봐도 그렇다. 직접 실험을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책상 앞에 앉아 이것은 이런 이유로 어렵고 저것은 저런 이유로 안 될 것 같다는 내리짐작만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낸 적이 적지 않았다. 또 충분히 생각하고 시작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실험을 해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 중에는 직접 부딪혀 봤다면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었던 것들도 많았다.

 

이런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마르쿠스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더욱 눈길이 갔다. 로마 제국의 황제라고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일 것 같았지만, 책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의외로 친숙했다. 그 역시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했다. 특히 오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면서도 내일을 택한다고 스스로를 나무라는 모습은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나 역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최적의 시기가 오면 시작하겠다며 미루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을 다스렸던 황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움직이기 위해 애써야 했다는 사실이 의외였고,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시작하기까지의 망설임은 거창한 일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운동을 가는 일만 해도 그렇다. 운동을 가기 전에는 피곤하다거나 다른 할 일이 있다는 등 온갖 핑계가 떠오른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시작하기 전의 걱정이 실제로 행동했을 때 느끼는 어려움보다 클 때도 있는 것이다. 연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충분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일이지만,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때로는 실패한 실험에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기도 한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생각이 행동의 발목을 잡지는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인간으로서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

 

연구든 삶에 관한 이야기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마주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질문들은 대개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생각의 허점을 찌르는 경우가 많았다.

 

책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 역시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었다. 아테네의 장군들에게 용기란 무엇인지 묻고, 그들이 제시한 답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용감한 행동을 여러 가지 알고 있다고 해서 용기 자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역시 어떤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사용하던 개념들도 막상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연구를 하다 보면 이러한 상황을 자주 겪는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일치하면 내가 생각한 가설이 맞았다고 쉽게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 그 결과가 정말 내가 생각한 원인 때문인지,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질문하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상했던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과 그 결과가 나타난 원인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 모르는 부분이 드러나는 순간은 썩 유쾌하지 않다. 나름대로 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했던 내용에서 허점이 발견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이해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가정을 하나씩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지금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 과정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당연히 좋은 선택이라고 받아들인 부분은 없었을까? 이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기인데, 여전히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내려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물론 모든 선택의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삶을 따라가는 것과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모두 읽고 난 후 나에게 지혜가 쌓인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처음에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통해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들 역시 삶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운 것은 자신이 마주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태도였다.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무겁고 어려운 문제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그리고 충분히 고민한 후에는 실패를 걱정하며 주저하기보다 직접 부딪혀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하나씩 생각하고 행동해 나간다면 어제보다는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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