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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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을 보며,
-유시민의「국가란 무엇인가」을 읽고-
아시안게임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시안게임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졌어도, 예나 지금이나 경기를 볼 때 나의 감정에는 변함이 없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던 국경이 경기장 위에서는 선명해진다.
선수가 승리하면 마치 나의 일처럼 기쁘고,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묘한 뿌듯함도 느낀다.
평소에는 잠들어 있던 애국심이 스포츠 경기를 통해 깨어난다.
하지만 문득 이런 감정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태어난 국가를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같은 나라의 선수를 응원하고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일까.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나는 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인류애보다, 같은 국가에 속한 사람을 향한 애정을 먼저 느끼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애국심보다 먼저 생각했어야 했던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가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묻기 전에, 애초에 국가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했다.
근대 국가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리바이어던’의 저자인 홉스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자연 상태’로 비유한다.
자연 상태에는 모두가 따라야 할 질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공통의 기준도 없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기 어렵고 정의와 불의를 가릴 수도 없다.
각자가 자신의 생명과 이익을 스스로 지켜야 하기에 인간의 삶은 불안하고 고독하며 비참해진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복종하는 공동의 권력을 세웠고, 그렇게 ‘'리바이어던’, 즉 국가가 탄생했다.
여기서 국가는 공동의 안전을 위해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며, 국가의 임무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를 막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폭력’이라는 단어는 거칠게 느껴지지만, 법을 어긴 사람을 체포하고 처벌하며 외부의 공격에 맞서는 힘이 없다면 국가가 세운 질서도 유지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나의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밤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주위를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약속한 재산과 권리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호소할 곳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
평소에는 공기처럼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 아래에도 국가가 만든 질서가 흐르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애국심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한다.
나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주고,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면 그 공동체에 애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어쩌면 애국심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경험 속에서 생겨나는 마음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마음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을 지켜 주는 동시에 바깥에 있는 사람을 구분한다.
더구나 울타리를 지킬 힘이 너무 커지면 그 힘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향할 수도 있다.
국가가 없는 자연 상태도 두렵지만,아무런 제한 없이 힘을 휘두르는 국가 역시 두렵다.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이를 비판하는 것 역시 애국심과 멀리 떨어진 행동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국가가 본래의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애국심일 수 있다.
이제는 아시안게임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전보다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극기가 올라갈 때 느끼는 뿌듯함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기보다, 내가 살아온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애국심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자연스럽게 피어날 수 있는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를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국가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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