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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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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찬미
댓글 0건 조회 1,321회 작성일 25-04-14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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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 생물학적 사실에서 비롯된 이야기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전체에 던지는 깊은 질문임을 알게 된다. 룰루 밀러는 이 문장을 단순한 과학적 정보로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의미, 인간의 신념, 질서에 대한 집착까지, 가장 근본적인 사유로 확장시킨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따라가는 논픽션이다. 그는 자연을 구조화하려는 집요한 열망으로 어류의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 심지어 지진으로 수천 개의 표본이 파괴된 후에도, 그는 물고기들을 바늘로 꿰어 고정하는 기묘한 작업을 시작한다. 세상이 무너져도 자신이 만든 질서는 남아야 한다는 듯이.


 이 황망한 장면에서 저자 룰루 밀러는 묘한 매혹을 느낀다. 그녀 역시 삶이 무너진 순간에 있었다. 사랑을 잃고, 목적을 상실하고, 존재 자체에 회의하던 순간. 그리고 그런 순간에 조던 같은 인물을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고자 했다. 단지 과학자가 아니라, 어떤 신념을 끝까지 붙잡았던 인간의 단단한 뒷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던을 깊이 추적할수록, 밀러는 점점 다른 얼굴과 마주한다. 그는 단지 과학의 순수한 신봉자가 아니었다. 우생학을 지지했고, 불편한 진실을 덮었으며,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의 위계를 정당화했다. 생명을 줄 세우고, 우열을 따지고, 어떤 인간은 ‘덜 진화한 존재’라 여겼다. 조던이 붙잡았던 질서는 진리가 아니라, 신념이었고, 그 신념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밀러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다시 질서를 되찾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우리는 왜 질서를 그토록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근본적이라는 걸.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이 문장은 마치 싸늘한 경고처럼 다가오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위로가 된다. 이 세계는 본래 무질서하며, 우리가 그어놓은 모든 경계선과 분류는 결국 불완전하다. 생물학에서도 ‘물고기’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연골어강, 조기어강, 육기어강 등은 서로 생물학적 특성이 다르며, 진화 계통상 공통된 조상을 가진 단일한 범주로 묶을 수 없다. 우리가 자연스레 사용하는 ‘물고기’라는 이름이 실은 허구라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과학이란 결국 확정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일이다. 밀러는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의 끝에서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그녀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혼돈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것을 이기려 드는 게 아니라, 그것 안에서 눈을 뜨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은 사람을 향한다. 저자는 잘못된 범주화로 상처 입은 이들을 만나며, 진짜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지만, 사실상 가족이었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버티는 것이다. 신념보다 귀한 것은 타인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언어로 쓰인 책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질문이자, 감정의 균열을 회복해가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이 책은 말한다. 질서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혼돈은 피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주 작은 방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결국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진실이 아니라 관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두는 용기,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손, 그리고 그 와중에도 사람을 향하는 눈. 이 책이 남기는 가장 깊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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