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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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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규
댓글 0건 조회 1,375회 작성일 25-04-1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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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양귀자 -


행방을 알 수 없게 자신의 뜻대로 떠돌다가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아버지, 조직의 보스를 꿈꾸며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철없는 남동생, 그리고 얼떨결에 가장이 되어 홀로 생계를 유지하고 남편과 자식의 사고 수습 위해 시장 한 켠에서 양말을 팔며 거칠게 살아가는 어머니. 소설 『모순』 속 주인공 안진진은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한편,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 이모는 건축가인 이모부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모두 외국에 유학을 보내고, 넉넉한 경제력 속에서 안정된 삶을 누린다. 안진진은 이렇게 상반된 두 사람의 삶을 지켜보며, 인생이란 무엇인지, 모순적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소설의 도입부 속 안진진은 이십대의 절반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낀 적이 없는 자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신의 삶을 놓고 진지한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인생을 그저 받아들이기 보다는 좀 더 능동적으로 탐구하면서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한다.

 

10년 전쯤, 서재에서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단 두 글자 ‘모순’만 적힌 책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엔 같은 도입부를 읽고도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덧 이십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 도입부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특히, 최근 들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엇 하나에 미친듯이 빠져본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종종 생각을 해오던 터라 홀린 듯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 하고, 말 안 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 처럼 평온하게 말고.’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로, 결혼 전까지는 외모도 살아온 배경도 같았다.  하지만, 부유한 건축가와 결혼한 이모는 딸과 아들을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여유로운 삶을 산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고뭉치 아들과 안진진이 스무살이 되던 해 완전히 집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안진진의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작 중 누구라도 부러워할 법한 삶을 산 이모는, 마치 무덤 속에 있는 것 같이 평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삶을 포기한다.

 

소설을 읽다 보니, 중학생이던 때 중국어를 배우다가 알게 된 모순(矛盾)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떠올리게 되었다. ‘모(矛)’는 창을, ‘순(盾)’은 방패를 의미하며, 중국 초나라의 한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이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 없고,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한다”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모의 삶이 정작 스스로에겐 한없이 지리멸렬하고 불행한 삶이었다는 것을 이모의 죽음으로 보여주면서, 모순적으로 행복의 이면에는 불행이, 불행의 이면에는 행복이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행복과 불행’, ‘풍요와 빈곤’, ‘삶과 죽음’과 같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이 사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일 뿐이라는 점을 소설 전반을 통해 드러낸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내 마음을 알면서도 그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모순투성이의 삶을 살아왔다. 이렇게 삶의 도처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동안 고민해왔지만, 소설 『모순』은 주인공 안진진의 삶을 통해 내게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앞으로는 마음 가는 대로 직접 부딪혀 가며 내 인생의 모순을 조금씩 더 알아가보고자 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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