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Übermen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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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120회 작성일 25-05-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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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Übermensch ”

- ‘프리드리히 니체‘ 로부터, 어나니머스 著 「Übermensch」 를 읽고 -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기반으로 -


 - 신은 죽었다.

 니체가 던진 이 선언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절대적 가치와 도덕이 무너진 시대, 다시 말해 허무주의(Nihilism)의 도래를 상징한다. 더 이상 신도, 절대적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신은 죽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의 빈자리를 채우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거나, 타인을 지배하는 절대 군주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 신은 죽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 빈자리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무너진 가치 위에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 니체는 그것을 위버멘쉬(Übermensch) 라고 불렀다. 우리가 -되거나, 되어야만 하거나, 결국 될 수밖에 없는- 존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등장하는 위버멘쉬라는 개념은 흔히 '초월적 인간'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번역 '될' 뿐, 니체는 결코 위버멘쉬를 무언가로 단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위버멘쉬의 정의를 생략한 채,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너희는 그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그의 말을 되짚어 보면, 위버멘쉬는 완성된 초인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매 순간 자신을 넘어서는 의지의 표상이다. 기존 도덕과 가치의 틀 안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존재. 니체는 인간이 결국 '되어야 할 무엇'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 이후 허무 속에 빠진 인간에게 니체가 건넨 해답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다. 오히려, 매일 자기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에 가깝다. “나는 지금, 정말 나의 가치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기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가?” 니체는 이러한 인간의 현재를 ‘다리’에 비유했다. 단순히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그 너머로 건너가야 할 존재. 위버멘쉬란, 바로 그 ‘다리’를 건너려는 의지 자체이다. 자기 부정과 재창조, 그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는 것.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도달함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다.

 

 니체가 던진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떳떳하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했다. 과연 나는 어제의 나를 넘어선 적이 있을까. 나는 얼마나 나를 초월하고 있는 것일까. 칼날처럼 깊게 파고드는 성찰의 아픔에 아무렇지 않게 또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짙게 물들었다.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안정(安定)만을 정답이라 믿으며, 타인의 시선을 따라 살아가는 삶. 니체가 이를 보았다면 분명 "그것은 너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꾸짖었을 것이다. 그의 가르침 대로, 위버멘쉬는 자신의 삶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거창한 이상을 꿈꾸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스스로 뛰어넘고, 주어진 고통과 상황을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며, 자신만의 가치로 살아가는 것. 매일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선택하는 그 태도가 곧 니체가 말하는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외로움을 동반하며, 매일의 성찰은 종종 후회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니체는 내게 끊임없이 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계속 너를 넘어설 수 있느냐”

 

 한참을 고민한 나는, 비로소 그에게 답한다. 나는 아직 위버멘쉬가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부터는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어제보다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는 그 의지를 품어 보겠다고. 아직은 미약하더라도, 스스로 내딛는 그 첫걸음이 바로 니체가 말한 ‘다리’ 위를 걷는 의지의 걸음이 되겠노라고.

 

 내가 내 자신을 넘어선다는 일은 결코 단순한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익숙함과 안락함 속에서, 얼마나 자주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또 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불편함에서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고 맞서 나아갈 때, 나는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것만 같다. 아니, 찾지 못해도 좋다. 나의 위버멘쉬는 ‘답을 찾을 것만 같다’ 는 말 이전에 이미 ‘맞서 나아갈 때’라는 말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

 

결국, ‘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되려는가’의 의지에 달린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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