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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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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1,489회 작성일 25-05-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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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 페터 한트케 -




1.

패터 한트케 「관객모독」의 장르는 희곡이다. 책의 제목(혹은 공연의 제목)인 ‘관객모독’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연극이 아니라, 실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연극. 줄거리가 있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배역을 맡은 배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사를 뱉을 배우와 그 대사를 들을 관객으로 구성된다.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 관객들은 자신들이 당하는지도 모르게 한 차례 한트케의 조롱거리가 된다. 극장에 도착한 관객들은 다른 공연과 별 다를 것 없는, 익숙한 극장 분위기를 경험한다. 극장의 절차에 따라 좌석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하고, 막 뒤로 가려진 무대에서 들리는 작은 움직임 소리들을 듣게 된다. 무대장치를 옮기는 듯 끌고 당기는 소리,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와 스텝들의 발걸음과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모두 스피커를 통해 구현된 소음들로, 관객이 알고 있는 익숙한 환경을 구현하여 평소와 같이 연극이 준비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장치이다.

  

막이 오르고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텅 빈 무대와, 혼잣말을 하듯 욕설을 내뱉으며 나오는 4명의 배우들이다. 무대에 자리잡은 배우들은, 그들이 하는 것은 연극이 아님을 선언하며, 관객들을 향해 계속해서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기서는 연극이 공연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환상이 없는 연극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은 대상들을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상들을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 여러분은 생각 없이 앉아있습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고 앉아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하지 않습니다. … ” 

"이곳에서 연극이 공연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의미있는 세계가 공연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연극 작품들에는 배경과 기본 무대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런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 여러분이 보았고 들었던 것 들은, 여러분이 보았고, 들었던 것에 그쳐서는 안됐습니다."  



“이것은 연극이다.”,혹은 “아니다.”로 시작하여 ‘이것은 어떻거나 어떻지 않고, 여러분은 어떻거나 어떻지 않다.’는 식의 문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긍정과 부정이 반복되고, 하나의 명제가 등장한 직후 바로 그 반대의 선언이 이어진다.

배우들은 끊임없이 대사를 이어가지만, 특정 대사에 배정된 배우는 없다. 대사를 내뱉는 배우들은 대사의 주인도 아니고, 발화의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대본에 쓰인 대로 계속해서 관객을 향해 내뱉는다. 이 연극 아닌 연극에서, 오히려 끊임없이 호명되는 관객들이 무대의 관객임과 동시에, 배우들에게 계속해서 지목되는 대사의 주인공이 되어,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연극의 참여자가 된다. 


“여러분은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흥미의 중심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여기서 아무런 운명도 지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아무런 인생 체험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단지 연극을 체험합니다. 여러분은 확실하게 무엇인가를 체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연극의 참여자라는 걸 관객들은 인지하지 못한 것일까? 관객은 결국 공연 말미에 ‘여러분들’에서 ‘너희들’로 호칭이 바뀌게 된다.


… 너희들은 항상 거기에 앉아 있었다. 이 연극에서 너희들의 성실한 노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중략) … 너희들은 모두가 똑 같은 모습이었다. 너희들에게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 너희들은 서로 훌륭하게 연기했다. 너희들은 삶의 이야기를 듣고 배웠다. 멍청이들아, 막돼먹은 인간들아, 부도덕한 인간들아, 떠돌이 사기꾼들아… (이하 생략)”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 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배우들은(배우의 입을 빌린 한트케는) 한참을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욕을 내뱉더니, 돌연 공연을 종료한다. 공연 시작 전과 마찬가지로, 스피커로 구현된 박수소리가 울려퍼지며 공연은 종료된다. 




2.

‘시체 관극’이라는 말이 있다. 뮤지컬, 연극 등의 공연장에서 주변 관람객의 작은 행동에도 너무 과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여 눈치를 주고 비난을 하는 일부 공연애호가들의 행위 때문에 이들에게 지적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른바 ‘시체처럼’ 관람해야 한다는 표현이다. 


타인의 관람을 방해할 정도로 공연 중에 소음을 유발하거나, 움직이는 행위는 잘못 된 것이 맞지만, 통상적인 공연 관람 예절을 넘어서는, 감탄, 웃음, 탄식과 같은 공연 관람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들까지 금기시하며, 웃음 포인트와 박수까지 약속된 타이밍에 하지 않는다면 눈초리를 주는 이들 덕에, 성숙한 관람 문화를 넘어선 경직된 관람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에 아쉬움이 있다.  


물론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무대 공연은 스크린처럼 고정된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내용, 같은 배우로 무대를 꾸민다 하더라도 관객이 다르고 반응이 다르면 그 공연은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연하는 모든 회차를 볼 수는 없기에 조금이라도 같은 공연을 쾌적하게 관람하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그렇기에 ‘연극은 이래야 한다.’라는 정해진 전제 하에, 형식에 길들어져 정해진 호응을 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


패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에서 비판하고자 한 관객의 모습은, 이런 형식에 길들어진 성실한 관객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은 결국, 무대에 있는 배우와 무대 밑 관객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지는 공연이다. 연극의 주인공이어야 할 관객들이 자꾸 조각처럼 가만히 있으며,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관객'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연기자로 앉아있는다.


정형화된 반응과, 감탄도 억제된 채 경직된 분위기가 정말 즐기고자 한 ‘공연’이 맞는지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관객들이 익숙하다 생각하는 공연장의 모습을 없애고, 연극의 양식을 바꾸었다.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연극일 수도 있습니다.’ 상반되는 선언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기대하고 보고 있는 건지, 내가 보려고 한 것이 이게 맞는지, 보려고 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되묻게 하고자 한 대사들을 던진다. 


기대한 것과 다른 것을 보았다면, 그건 잘못된 것일까?

눈 앞에 나타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는 없는 것일까?

그동안과 다른 것을 보았는데, 그동안과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이 맞는 행위일까?


 한트케가 꽤 오랜 시간을 내어 관객들에게 현재 이 순간의 경험에 집중을 하고, 느끼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관객들은 결국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관객들은 끝까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연에 정자세로 성실히 앉아있었고, 한트케는 그들에게 ‘역할을 잘 수행했다’며 칭찬하듯 돌려 비꼬며 공연의 막을 내린다. 한트케의 의도를 읽지 못해 연극 자체를 의뭉스럽게 보았을 관객들은 공연 말미에 욕까지 시원하게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다. 박수치지 못하는 관객을 향해 대신 박수 소리가 들리는 스피커를 틀어주며 마지막 조롱을 하며 연극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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