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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품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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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1,444회 작성일 25-03-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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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품은 세계

-황선엽 著-

 

대학원에 입학한 지 5년, 어느덧 이립(而立)의 문턱에서 수많은 선후배를 만나왔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구실의 공기 역시 계절처럼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요즘 후배들을 보면, 나보다 훨씬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교수님이나 선배의 말을 마치 길을 따라 걷듯 자연스레 따랐다면, 요즘 친구들은 회의나 연구에서도 주저 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실험 일정이나 업무 방식조차 스스로의 리듬대로 조율해간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전엔 늘 "확인하겠습니다"와 같은 조심스러운 말이 오갔다면, 이제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나 "이 방법이 더 좋지 않을까요?" 같은 솔직한 표현들이 편하게 흐른다. 솔직히 이런 새로운 대화의 물결 앞에서 가끔씩 나도 모르게 멈칫할 때가 있지만, 채 5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세상은 이미 많이 변했고, 그 흐름 속에서 그들의 언어도 자연스레 새 옷을 입은 것이리라.

언어는 시대의 거울처럼 사회를 비춘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의 모습에 따라 우리가 쓰는 말들도 자연스럽게 변화해 왔다. 예컨대, '개성'이라는 단어가 과거엔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뉘앙스를 풍겼다면, 지금은 오히려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튀다'라는 표현 역시 예전엔 조화를 깨는 부정적인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뜻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요즘 후배들의 솔직하고 당당한 언어 또한 스스로를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길 원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늘 반복되어 왔다. 언어는 시대의 생각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가 달라질 때마다 자연스레 새로운 모습을 입는다. 고대 우리말이 은유와 정제된 표현으로 가득했다면, 외세와 교류가 잦아진 통일신라 이후 중국식 이름 체계가 자리를 잡았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또 지금 우리 시대에는 '지드래곤'이나 '탑'과 같은 외국어 이름이나 '슬아', '하늘'처럼 순우리말 이름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이는 결국 지금의 우리가 가진 '개성', '자유로움'과 같은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해본다.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은 과연 이 시대의 흐름과 얼마나 조화롭게 맞닿아 있는 걸까. 어쩌면 내 안에서 여전히 버리지 못한 보수적인 습관이나 익숙함이 나도 모르게 말과 행동으로 드러났을지 모르겠다. 때로는 후배들의 솔직한 표현과 당당한 태도를 보며 순간적으로 당황하거나 불편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변화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표현했듯, 오래된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온다는 건 그만큼 힘든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틀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이 시대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로 세대와 세대가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연구자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조용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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