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평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1,492회 작성일 25-03-18 21:15

본문

평원

- 제럴드 머네인 –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The plains)’은 영화감독인 주인공이 평원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고자, 평원을 연구하기위해 평원에 방문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나오는 평원이 실제 지역인지, 아니면 작가가 설정한 임의의 지역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표현하기를 주인공이 온 곳은 ‘외곽 호주’로, 해안지역을 통해 외부(유럽, 아시아 등)와 맞닿아 있어 문화나 사고방식이 고유하지 않고, 외부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묘사되는 반면, ‘평원’은 대륙 내부에 위치해 있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륙 평원 자체의 문화가 존재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특히, 평원인들은 외부의 평가나 인식에 흔들리지 않고 그들 자신의 문화를 구축해 나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인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위해서, 평원의 부유한 지주 가문들은 각자 자신들의 땅에서 문화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가꾸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며, 자신들의 평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삶의 상세한 측면들과 그들이 가진 자연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평원에서의 풍요롭고 독특한 문화를 보존해왔다. 

 그렇기에 부유한 평원의 지주들은, 자신들의 평원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기록하거나, 보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후원해왔고, 사람들은 그들의 후원을 받기 위해 지주들 앞에 나서서 자신들이 그들과 그들의 평원을 위해 어떤 점을 기여할 수 있는지 지주들 앞에서 발표하고, 후원자로 선정되기를 기다린다. 


 책의 주인공 또한, 영화 촬영을 위한 후원을 받기 위해 지주들에게 자신의 영화 촬영 계획에 대해 발표하였고, 그 중 한 지주의 마음에 들게 되어 후원자의 집에 머물며 영화 제작을 위한 자료 수집과 촬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평원에 머물게 된 주인공은 그동안 외부에서 평원을 바라본 것과 실제 자신이 경험하는 평원에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외부의 사람들이 평원인을 볼 때, 이들은 드넓은 자연에서 풍경을 즐기며 야외활동을 즐기고,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인식(혹은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본 평원인들의 문화는 평원이라는 한 지역 내부에서 공유되는 하나의 공통된 문화가 아닌, 평원 내부의 서로 다른 가문들이 각자의 취향들로 탐색하고 구성한, 각각의 독특한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평원인들은 그 가문 사람이 아닌 사람이 보기엔 의뭉스럽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그들의 취향에 들어맞는 부분이라면 기꺼이 큰 돈을 투자하여 더 깊이 탐색하고 가꾸어 나가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필요하다면 거의 모든 사물이나 사실에서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시선에 사고가 갇히지 않았기에, 외부인이 들었다면 시답지 않게 여겼을 이야기들도 주의 깊게 듣고, 열린 마음으로 마주하는 사람들. 그렇게 자신들의 취향을 수집하며 깊게 탐색하여 각자의 문화를 구축해 나가는 사람들이 평원의 사람들이었다.

 

 책의 초반에서 ‘평원’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주들 앞에서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열정넘치게 발표했던 주인공은, 투자를 받고 후원인의 집에 머물며 평원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동안 자신이 알고있던 평원이 사실은 잘 못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과, 평원인들조차 평원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을 보고, 평원에 계속 머무르고 있음에도 자신이 무엇을 영상으로 남겨야 하는지, 어떻게 평원에 대해 표현해야 할지 방향을 잃어가며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저,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찍는 척하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그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후원받는 사람들이 모여 매년 자신의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하는 교류회에서도 몇 개의 평원 풍경을 찍어둔 영상을 틀어둔 채 ‘이런 방향으로 기획중이다.’정도만 반복하여도 매년 꾸준히 관심을 보여주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프로젝트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은 결국 주인공의 성취를 보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주인공의 실패는 책의 마무리까지 결국 한번도 프로젝트의 주제를 정리하여 결론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자신이 왜 ‘평원’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찍고 싶었는지, 어떻게 할 예정이었는지. 후원을 받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명확했던 그의 방향은 막상 후원을 받고 평원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때 마주한 예상과 다른 현실에 멈추어 버린 것이다.


 주인공의 방황은 지금 연구실에 앉아있는 수많은 대학원생의, 연구자들의, 그리고 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을 때든,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과제제안서를 쓸 때든, 논문을 쓰기위한 주제를 잡을 때든 혹은 그냥 작은 실험을 준비하는 단계라 할지라도.  시작을 준비할 때의 모습은 모두 열정적이다. 그 길이 정답일 것 같기에 거대한 청사진을 그려 펼쳐본다. 하지만 막상 마주치는 현실은 언제나 시작하기 전의 바람과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려둔 길 대로 따라가는 일 보다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틀어지는 일이 더 많고, 흥미로워 보였던 주제는 예쁜 포장지로 잘 쌓인 빈 박스일 경우도 있다. 


‘평원’에서의 주인공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기에 주인공이 결국 영화를 만들어 냈을 지, 아니면 후원이 끝나는 순간까지 방황을 할 지는 알 수 없다. 책의 마무리까지 주인공이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무엇을 하겠다는 방향조차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에게서는 실패를 보았다.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은 상황에 조금은 찝찝한 마음으로 책을 덮으며, 만약 그가 영화까지는 만들지 못하였더라도 어떤 영상을 만들어 낼지 시나리오라도 완성을 했다면, 혹은 프로젝트 방향을 바꾸어 그냥 관찰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면, 아니면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프로젝트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깔끔히 인정하고 이건 안되는 일이라고 접었다면 그래도 무언가 결론이 난 상황을 마주했기에 덜 찝찝했을까? 적어도 주인공이 무언가 결론을 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남는 건 주인공에 대한 아쉬움일까 똑같이 아무런 결론도 못 내고 있는 나에 대한 아쉬움일까


책 너머의 주인공도, 그리고 나도 드넓은 평원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문화를 구축해 나가는데 주저함이 없는 평원인이 되기를 바라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