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고리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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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번째 고리에 머물다 ”
- 단테 알리기에리 著, 박상진 譯 「신곡 : 지옥」 을 읽고 -
나는 나에게,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였으며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였다. 한동안 나는 나의 손을 잡고 깊이, 더 깊이, 끝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고개를 들어, 함께 내려오지 않아 아직 날것의 나에게 대신 질문을 건넸다.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고.
단테의 신곡은 중세의 종교적 상상력이 낳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었다. 그의 언어는 신념과 공포, 죄의식과 슬픔이 소용돌이치는 인간 내면의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그가 묘사한 지옥의 아홉 고리는, 단지 죄의 종류와 무게를 나누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슬픔과 무지함,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오만함이 어떻게 삶의 형체를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의도대로 나는, 그가 펼쳐낸 지옥의 고리를 하나하나 읽으며 내면의 무수한 어두움을 하나하나 만나야만 했다.
지옥의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문장이 있다. 얼핏 보기엔 상당히 잔인한 문장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보다 친절하고 따스한 말을 본 적이 없다고 느꼈다. 지옥에 들어가는 자에게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말은 아주 조금도 존재하지 않을 희미한 희망을 붙잡느라 헛된 힘을 다하지 말고, 그저 ‘지옥은 지옥으로 담담하게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맞이하라’ 는 진심의 안내문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결국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은 초연하게 맞이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던 희망의 불씨가 절망이라는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던 시간이지 않았나.
또 다른 이유로, 지옥에 들어서는 자에게 절망을 선포하는 그 문장은 오히려 내게 ‘희망’을 질문하게 했다. 그 질문은, 희망을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과연 내가 무엇을 희망하며 살고 있었는지에 대한 성찰의 씨앗이었다. 내가 희망이라 부르던 것들이 얼마나 자주 욕망과 구분되지 못한 채 뒤엉켜 있었는지를 떠올리면, 지금껏 품었던 희망을 모두 버리는 것은 앞으로 마주할 지옥의 시간 속에서 과연 진정한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명료히 구분케 할 나침반을 찾은 것과 같았다.
단테는 (어쩌면 내면에만 존재하는 허영의 인물인) 베르길리우스화 함께 지옥의 고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내려간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보여준 지옥은, 아니, 어쩌면 단테 스스로가 만들어낸 지옥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우리의 얼굴을 담고 있다. 우리의 죄는 그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며, 우리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자 내가 나를 마주하는 방식이었다. 믿음의 부재, 그을린 감정, 탐욕, 무지와 분노, 내면의 폭력, 허영과 기만 그리고 그 끝인 아홉 번째 고리, 배신의 지옥까지.
내게 있어 가장 비참한 죄악은 나를 향한 나의 배신이었다. 용서받기는 어렵고, 용서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남에게 용서를 구하기만 하거나 남들을 용서해 주기만 한다. 그러나 나를 향한 나의 배신은, 이 어려운 두 가지를 모두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둘의 무거움에 한없이 짓눌린 나는, 내게 용서를 구하지도 나를 용서하지도 못하고 가장 어두운 아홉 번째 지옥의 끝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루키페르(Lucifer)로 내면을 찢어내고 있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손을 잡고 아홉 개의 지옥, 그 어둠을 모두 통과한다. 결국 단테는 나의 이성(理性)에 대한 상징이었다. 단테라는 상징을 통해, 나는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으며 다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단테는 결국 별을 바라보며 지옥에서 걸어 나온다. 하지만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단테와 함께 ‘별을 바라보는’ 고개를 통해 삶의 방향은 어디인지 다시 묻고 또 묻게 된다. 어둠을 통과한 자만이, 그리고 그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자만이 별을 올려다볼 수 있겠다고.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손을 잡고 지옥(Inferno)을 빠져나와 연옥(Purgatorio)을 거쳐,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Paradiso)에 다다른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한동안은 지옥의 아홉 번째 고리에 머물 것 같다. 작품 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손을 잡은 단테가 아닌, 끝없는 심연에서 괴로워했을 인간 단테 알리기에리 도 그랬을 것이다. 가장 깊고 어두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가장 깊고 어두운 지옥에서부터 시작하는 길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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