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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차란 란가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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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준
댓글 0건 조회 1,939회 작성일 25-04-0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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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차란 란가나스

 

“기억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도구다”

 

“어, 내가 방금 뭐 하려 했더라?”

요즘 들어 자주 하는 말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멀뚱히 서 있거나, 휴대폰을 손에 들고도 그걸 왜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Retention이 안 좋아 진걸까? 방금 전에 한 결심이나 아이디어도 돌아서면 흐릿해져 버린다. 처음엔 가볍게 웃고 넘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자꾸 잊어버리는 이유는 뭘까?’ ‘기억한다는 착각’은 이런 내 질문에 놀라운 통찰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단순히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자책을 넘어, 기억이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게 만든다.

 

  책의 저자 차란 란가나스는 25년 넘게 기억의 작동 방식을 연구한 과학자다. 그가 말하는 기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확한 정보 저장’과는 거리가 멀다. 기억은 SSD나 하드디스크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가 아니라, 생존과 적응을 위한 ‘인간 중심의 도구’다. 놀랍게도, 우리가 기억을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결함’이 아니라 ‘기능’ 때문이다. 뇌는 기억해야 할 것을 선택하고, 때로는 잊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EW Cycling이 떠올라 웃음이 났던 기억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부엌에 들어가서 뭘 하려 했는지 까먹는 현상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사건의 경계선’이라는 개념과 관련 있다. 우리의 뇌는 상황이 바뀌면 정보의 흐름을 재정리하려는 습관이 있다. 즉, 장소를 옮기면 뇌가 새 장면에 집중하기 위해 이전 정보를 일부러 정리하거나 버리는 것이다. 이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뇌가 ‘지워야 할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는 일상의 실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뇌가 적절히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억은 인간의 감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일은 사소해 보여도 강렬한 감정과 함께하면 오래 남는다. 반면, 반복된 일상은 쉽게 지워진다. 이는 뇌가 생존에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걸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건 전체보다는 ‘절정’과 ‘마지막’ 순간을 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회고 절정 법칙’으로, 인간이 경험을 어떻게 요약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 날에 큰 감동이 있었던 여행은 전체적으로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이런 구조 덕분에 인간은 과거를 의미 있게 회상하며 살아갈 수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기억은 진실보다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기억은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가끔 왜곡되고, 삭제되고, 과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기억은 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정리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위기를 피하는 도구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기능인가. 우리는 정확한 기계가 아니라, 실수하고 느끼고 회상하는 존재이기에, 기억은 ‘사람답게 사는 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나 역시 기억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한때는 부끄러움이나 불안함으로 그런 변화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뇌가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 또는 감정적으로 더 안정되기 위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잊는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며, 나 역시 지금도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기억한다는 착각’은 기억에 대한 오해를 풀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책은 단지 뇌과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다정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이야말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도구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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