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페이지 정보

본문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긴 겨울 밤 나는 고뇌에 잠긴다.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재치 박사라면 사는 것이란 싸움질이라고, 극히 재치 없는 살벌한 대답을 할 것이다.
우선 일과의 싸움, 어제의 노고를 무(無)로 돌리고 밤사이에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와 쌓여 있는 일, 일, 또 일.
그럼 매일 이런 악전 고투에 임해야 하는 나는 무엇일까?
긴긴 겨울밤 올해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으니 이런 일 저런 일을 돌이켜 보게 되고 후회도 하게 된다.
이런저런 시시한 후회 끝에 마지막 남은 후회는 왜 이 어려운 세상에 아이들을 낳아 주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후회가 된다.
그리고 황급히 내 마지막 후회를 뉘우친다. 후회를 후회한다고나 할까.
아아, 어서 봄이나 왔으면. 채 겨울이 깊기도 전에 봄에의 열망으로 불안의 밤을 보낸다.
평소의 취향과 다르게, 가끔은 이런 문학적이고 우리말의 슴슴한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게 잘 표현하는 활자를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신기한 것은, 이런 류의 글을 삶에서 어느 시기에 접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바가 정말 다른데, 특히나 유년 시절에는 진지하게 읽혀지지 않아 그저 심심했던 글이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마주했을 때 생각보다 심각한 글이었구나를 깨닫고는 읽는 태도와 기분이 묘해지는 경험을 한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생각 차이로 갈등 상황이 유발되는 것을 요즘 자주 경험하곤 한다. ‘너희 2030 세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혹은 ‘지들 좋은 것만 하려 하네’ 하시며 짧막하니 내뱉는 당신을 보며 가장 먼저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비단 뉴스에서만 목격했던 젋은 세대에 대한 기성 세대의 따끔한 평가가 나에게도 실제로 벌어졌음에, 이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적인 흐름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모자름인가에 대해 고뇌에 빠지게 된다. 더 나아가 그들도 젊었을 적 어르신들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을 것을 상상해보면 이것도 역시 세대를 거듭하며 돌고 도는 한 때의 그런 평범한 것들이라 치고 넘겨 짚을 참이었다.
가족의 규모가 1인 가구로 축소하다 못해 차차 소멸해 가고 있는 지금, 우리 세대는 유난히 서로에게 더욱 각박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기분과 나의 성취가 우선시 되다 보니 주변을 챙기고 돌보는 시간을 만드는 것조차 하나의 일이라 생각하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말을 이제는 다시 고쳐 생각해야 할 정도로 만남과 대화의 시간이 줄었다. 교류가 거의 단절되다 보니, 서로 말못할 오해와 의심이 쌓여갔다.
박완서 작가님의 <나목> 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라는 작품을 중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작가님의 성함을 기억하고 있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 이십 대의 말이 되고 다시 뒤늦게야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어느 덧 자라버린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 바라보며 소소했던 일상과 솔직한 감정을 아름답고 순수한 말로 엮어낸 작품이었다. 어머니란, 항상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행여나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염려하는 것이 일상이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의 얼굴이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 연락을 해야겠다 결심을 하다가도, 행여나 공부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수없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그런 것이 일상이다. 이것도 벌써 수년 전 일이지만, 부모의 자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은 형태는 조금 다를지라도 세대와 집안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오랜 버릇인 초저녁부터의 숙면과 새벽의 각성과 그때부터 날 밝기까지의 완벽한 고독 또한 사랑하는 걸 어쩌랴.
박완서 작가의 마음 한 구석에 늘상 존재하는 어머니로서의 불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해야 하는 일을 반복해야하는 운명을 그려낸 아름다운 서사를 보며, 인간이 일생동안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와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 이전글여름나기 25.04.05
- 다음글인연은 기억 속에서 지속된다. 25.04.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