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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있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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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1,336회 작성일 25-04-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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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는 우리가 보통 외면하거나 낯설게 여기는,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익숙지 않고 불편한 주제일지라도, 그곳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삶의 일부이며,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어둠의 자락을 걷어내고, 그 안에 담긴 개인의 아픔과 성장, 그리고 선택의 무게를 조명한다.


 주인공 정인수의 삶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된다. 그가 거리로 향하기 이전, 거리에서의 삶, 그리고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 흐름은 단지 한 개인의 서사에 머물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와 사회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인수는 가정 폭력과 냉담한 부모의 시선 아래 자랐다. 겉으로는 부족함 없는 환경이지만, 진심 어린 애정이 결여된 공간이었다. 이 책은 ‘집’이라는 장소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님을 강조한다. 안전하고 존중받는 감정이 없다면, 그곳은 결코 ‘집’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부모는 사랑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르치지도 않았다. 인수가 틀렸을 때 그를 바로잡기보다, 비난하고 소외시켰다. 그 결과 인수는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채 타인을 따라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고,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모방과 방황 뿐이었다.


 거리에서 인수가 만난 아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 이들은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내일보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 무리 속에 경우라는 인물이 나타나며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을 맞는다. 경우는 이타적이며, 책임감 있고, 미래를 계획하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거리에서의 삶조차 따뜻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경우는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고, 소설 속 세계는 그를 잃은 뒤 한층 더 황량해진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은 “사랑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수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해, 타인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은 예정된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이야기는 단지 거리의 삶이나 가정 폭력에 대한 폭로가 아니라, 사랑과 관계의 부재가 어떤 사람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문득 내가 성인이 되기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청소년기의 나는 엄격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때로는 조금 더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맞는 말씀이더라도 괜히 반항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지 내가 잘되길 바라시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였고,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그 말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이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경우 없는 세계』는 무겁고 때론 암울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이야기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삶이 있고, 그 삶에도 존엄과 희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쉽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손을 내미는 작은 실천이 ‘경우가 있는 세계’를 만드는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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