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그리고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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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그리고 2025
-조지 오웰의 「1984」을 읽고-
1984
소설 1984는 ‘집단속에서 개인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가’의 한 극단적인 케이스를 그린다.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이 소설은 시민의 삶과 사상을 ’빅 브라더’라는 가상의 인물을 앞세워 국가가 독재하는 디스토피아의 사회를 보여준다.
당은 집안과 사무실 공간을 포함한 모든 공간을 24시간 동안 감시하며 숨겨진 마이크로폰을 통해서 사람들을 감시하고 탄압한다. 늘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존재, 끊임없이 명령을 내리는 어떤 존재, 실존하지 않아도 그의 음성이 내면화되어 나의 선택에 간섭하는 존재, 그가 ‘빅 브라더’이다.
소설 속 디스토피아에서는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한다.
‘신어’의 핵심은 글의 체계를 단순화시켜 종국에는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시켜 복합적인 사고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어휘를 차츰 줄여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good의 반대말은 bad이지만, 이러한 단어를 없애고 un-good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바꾸는게 신어의 개념이다. 그 이외의 다른 표현들은 존재할 수 없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결국 글이 쓰고 싶어진다.
반대로 많이 읽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방법이 없다.’
표현이 풍부한 언어를 가진 민족은 감정 표현이 다양해지고, 역으로 사고가 유연한 민족은 풍성한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사고가 깊어지는 것이 그러하다.
극도로 단순화시킨 이 ‘신어’를 통해 당의 진리부는 인간의 사유를 제한하려 한다.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하게 단 한 마디로 표현될 거고, 그 의미는 정밀하게 뜻을 나타내고 다른 보조적 의미는 지워져 잊게 될 테니까 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낱말의 수는 줄고, 그러면서 의식의 범위도 계속해서 좁혀지는 거지.’
사고의 폭을 좁히면 사람들이 광범위한 사고 자체를 할 수 없게 되므로, 진실과 허위를 가려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없게 된다. 다르게 사고하거나 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025
소설은 뭐 그렇고, 과연 오늘의 사회는 어떠한가.
오늘 우리는 바야흐로 ‘시민 독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의 사진과 정보들을 인터넷과 SNS를 통해 검색할 수 있으며, 동시에 나의 정보도 수집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마치 SNS가 ‘빅 브라더’의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어쩌면 오늘의 ‘빅 브라더’는 소설 속의 ‘빅 브라더’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과거 TV나 신문, 언론사를 통해서 접해야 했던 정보들은 오늘 SNS를 통해 가히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며 심지어 궁금하지 않은 정보들조차 마구마구 뿌려댄다.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은 SNS에서 접하는 이러한 정보들은 누군가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의 발화점에 악의가 담겨있던 그렇지 않던 일단 불이 붙으면 무섭도록 빠르게 퍼져나가고, 정보의 사실여부보다는 정보의 자극성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나의 의지와는 관련없이 자극성이 강한 소식들이 빛의 속도로 퍼져와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핸드폰을 켜고, 컴퓨터를 켜서 매일매일 우리를 세뇌시키는 무엇인가에 빠뜨리는 것이다.
시민이 시민을 판단하고, 조종하는 오늘 사회와 소설 속의 디스토피아는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소설 속의 세계보다 오늘 우리는 인생 난이도가 더 높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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