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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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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1,416회 작성일 25-05-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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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되리의 『미각의 번역』을 읽고

 


 예전에도 지금도 ‘제육볶음’이라는 음식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흔히 남자들의 소울 푸드라고 여겨지곤 하지만, 나에게는 늘 “그냥 그런 음식”이었다. 자극적인 양념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고, 매번 비슷한 맛이라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날 문득 제육볶음이 생각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좀 피곤하고 기운 없던 시기였는데, 그때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그 자극적인 맛이었다. 어쩌면 몸이 먼저 반응한 걸지도 모른다. 입맛이라는 건 꼭 취향이나 기호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시기에는 몸이 먼저 필요로 하는 걸 마음보다 먼저 알아차릴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날, 마트에서 기본 재료들만 대충 사 와서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특별한 조리 도구도, 정교한 레시피도 없었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양념을 섞고 고기를 볶았을 뿐인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맛보다도‘직접 해먹었다’라는 사실이 더 인상 깊었다. 그게 오히려 더 중요한 지점이었다. 고기 반찬 하나 해먹은 건데 괜히 하루가 덜 헛된 것 같았고, 내 손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실감이 났다. 요리를 꼭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지금 이걸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들었고, 그걸 맛있게 먹으며 충족감을 느꼈다는 것. 그 단순한 흐름이 꽤 명확하게 느껴졌다. 입맛이라는 건 고정된 게 아니라 흐르는 감각 같기도 하다. 예전에 좋아했던 음식이 시들해지기도 하고, 안 좋아하던 게 어느 날 유독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변화는 단지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나 기분, 몸 상태 같은 것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도리스 되리의 『미각의 번역』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책 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것은 변한다. 아름다운 변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어떤 변화는 하루 빨리 일어나길 고대하지만, 변할까 두렵기만 한 변화도 있다. 그러나 변화를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일상에서 변화를 실천하고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부엌이다.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 거듭되는가. 볼품없는 감자 한 알이 감자퓌레가 되고, 뇨키가 되고, 포테이토 수플레로 변신하는가 하면, 밀알은 빵과 파스타가 되고, 크로와상과 피자가 되며, 돼지고기는 베이컨과 돼지고기 구이, 테부어스트가 된다.” (p. 43-44)


 

 도리스 되리는 ‘부엌’을 변화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장소로 이야기한다. 재료가 다른 무언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삶도 그렇게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변화의 실험은 요란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행위 속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그날 그날 나를 잘 돌보는 일이다. 아주 맛있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어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마음을 다독여준다. 뭘 먹고 싶어진다는 건 내 안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지쳤거나, 몸이 느릿해졌거나, 혹은 그냥 무언가를 돌보고 싶어진 걸지도. 그런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따라가보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제육볶음 하나 해먹었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날 만큼은 조금 괜찮아졌다. 배가 든든해지자 머릿속이 덜 복잡해졌고, 괜히 하루가 정돈된 것 같았다. 요리는 큰 의미 없이 시작해도, 하고 나면 결과가 분명하게 남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나를 돌아보는 방법 중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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