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사랑과 결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1,615회 작성일 25-03-17 17:24

본문

2013년 가을, 카이스트 학부 1학년 2학기가 되어 첫 교양 수업의 맛을 본 때였다 (1학기 때는 기초필수 과목과 2점 차이로 면제받지 못한 영어 과목 1개를 들어야 했다). 당시 연세대학교에서도 종종 강단에 서시던 한 문학 전공하신 박사님의 <사랑의 담론> 이라는 수업은 카이스트 내에서도 매우 인기가 높아 수강신청이 쉽지 않은 과목이었다. 물론 여기서 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내가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얼핏 제목을 보면 연애에 대한 수업일 것 같으나,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이 수업을 들으면 많이 실망할 것 같다. 이 수업은 말 그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한,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어진 수많은 철학자들과 그리고 심리학자들의 치밀한 철학적 사고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해당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혼주의니 하는 담론이 떠돌고 있는 요즈음에도 여전히 대다수는 결국 짝을 찾고 결혼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함이 없을 수가 없기에 그런 걸지도. 소설 <사랑과 결함> 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가부장제도하에서는 인간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애착이 매우 불안정하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그리고 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남동생의 공부를 뒷바라지 하였지만, 그 동생이 이룬 가정 내에서는 ‘이모’라는 이름으로 영영 불청객일 수 밖에 없는 ‘순정’의 삶을 그려냈다.


순정은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소외와 고립이었다. 동생의 가족 안에서조차 그녀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제외될 수 있는 것이었다. 소설은 이러한 그녀의 상황을 통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도 애착과 사랑이 반드시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소설은 인간이 사랑을 갈망하는 이유가 단순한 감정적 욕구가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본능적인 시도임을 시사한다. 순정은 동생과 조카를 향한 애정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덜어내려 했지만, 그녀가 속한 관계는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맺는 관계가 때때로 결핍을 메우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상처를 낳기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순정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체제 안에서 여성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현실 속에서, 순정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정작 본인은 그 가족의 온전한 일원이 될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이모’라는 역할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헌신이 언제든 배제될 수 있는 주변부적 존재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러한 현실을 통해 가족과 사랑이 반드시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 개인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제도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순정의 삶을 통해 우리는 사랑과 희생이 과연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고민하게 된다. 흔히 사랑은 자기 희생을 동반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희생이 반드시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배척과 외로움 뿐이었다. 이는 사랑이 반드시 보답 받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의 관계 속에서 때때로 한 사람의 헌신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할까? <사랑과 결함>은 사랑이 단순히 감정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관계 속에서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존중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사랑은 타인을 향한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지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사랑과 결함>은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며, 때로는 결함을 메우기보다 더욱 깊은 결함을 드러내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사랑이 우리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관계 속에서 그것이 완전한 치유가 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순정의 이야기는 그러한 사랑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우리가 맺는 관계들 속에서 건강한 애착과 소속감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