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페이지 정보

본문
미키 17
- 봉준호의 '미키 17'을 보고 -
'미키 17'은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인 '미키 7' 을 원작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다. 해당 작품의 주인공인 '미키 반스'는 통칭 '익스펜더블(Expendable)'로, 외우주에서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어 죽음을 반복하며, 사망 시 기억과 생체 정보를 저장한 채 새로운 육체로 다시 프린트되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죽었을 경우 기억을 그대로 계승하여 다시 태어나는 복제 인간인 것이다. 그러던 와중 사고로 인해 '미키17'과 '미키18'이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플(Multiple)'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그에 얽힌 작중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우주 식민지 사회에서의 복제인간, 윤리, 인간의 정체성 등에 관한 여러가지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 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기대했던 것 만큼 좋지는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는, 감독의 전작 '기생충'에 비해서는 말이다. '기생충'은 예상치 못한 전개를 통해 자본주의의 빈부격차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었는데, '미키17'또한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자본주의와 빈부격차에 대한 물음을 던지긴 하지만, 그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평면적이고, 줄거리 자체도 '기생충'과 달리 충분히 예상 가능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복제인간과 윤리라는 영화의 주제 자체는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바야흐로 AI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아직은 AI 가 그저 빅 데이터 학습을 통해 인간을 모방하고 있을 뿐이고(훨씬 고성능이고 효율적인 사고를 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인 '강 인공지능'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눈부신 발전 속도로 보아 어느 순간 강 인공지능이 등장하여도 그렇게 놀랍지는 않을 것 같은 상황이다.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AI 가 인간의 모든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과연 인간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 될 것이며, 세상에 인간이란 종의 가치가 과연 존재 하겠는가. AI 가 인간의 행동과 사고, 심지어 감정까지 완벽히 모방한다면 과연 그것을 인간의 범위 안으로 포함 시켜야 하겠는가 등등.
이렇게 AI 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아지며 인간의 권리, 인간의 범위에 대해 점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 AI 보다 더 앞서 생각해야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미키 반스'와 같은 복제 인간이다. 강 인공지능이야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복제 인간은 현재의 과학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동물복제에 대한 실험이 많이 진행됐었고, 이렇게 동물 복제가 가능한데 인간의 복제가 불가능할 리가 없다. 다만 윤리적인 문제로 인간 복제를 법으로 금지해놓았기 때문에 연구되지 않을 뿐. 하여튼, 현재 법으로 인간의 복제가 금지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해당 법이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져 인간 복제가 횡행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을 경우 우리는 복제 인간을 어떤 존재로 대해야 할까? 사실 복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상당히 많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나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복제 인간은 매력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영화 '아일랜드'와 같이 복제 인간을 배양한 후 원 주인의 장기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복제 인간의 장기를 적출하여 원 주인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유전적으로 본인의 장기이기 때문에 면역 거부반응을 거의 0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꼭 장기 뿐만 아니라, 혈액 수혈도 용이해 질 것이며 몸의 노화된 장기를 교체하여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미키17'과 같이 인간이 꼭 필요하지만, 위험성 때문에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는 지역에 복제인간을 투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연구를 하는 방식으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윤리를 버릴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점이 꽤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인간과 같은 외형을 갖고, 인간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존재를 윤리를 빼고 다룰 수 있겠는가. 그들도 인간을 복제한 존재인 이상, 우리와 같은 생각과 감정을 지니고 태어날 것인데. 이런 감정이나 윤리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으로도 복제 인간을 가축취급하여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필연적으로, 우리의 역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권리와 안녕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태어난 핏줄로 인간을 나누던 신분 제도는 거의 사라졌으며, 과거 생존이 문제였던 시절 그 안위는 뒷전이었던 동물들은 법으로 보호받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사회는 발전해 왔으며, 우리 조상들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평범한 우리가 세상을 더 잘 살아가게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복제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인권의 퇴보를 불러올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와 같은 복제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사회에 생겨나게 되면, 그로 인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더 이상 인간으로 취급 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겉과 속이 우리와 같은 복제 인간을 동물로 취급하게 된다면, 비슷한 맥락으로 권력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동물로 취급하면 안되는 이유가 하나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윤리라는 이름으로 지켜지고 있던 우리의 권리가 하나 둘 사라지게 되고, 안그래도 혼란한 요즘 사회는 한층 더 어두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윤리와 법이 계속해서 잘 유지되어 우리가 죽을때까지 복제 인간을 사회의 밝은 곳에서는 보지 못할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인간과 윤리에 관한 토론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AI 는 아직 인류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회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이 얻고 있는 이점과 편리성은 무척이나 크지만, AI 는 그만큼이나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회적인 혼란을 안겨 주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무기물이 가진 파급력이 이정도라면, 신이 빚어냈다고 여겨지는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인간을 다시 탄생시켰을때 생길 사회적 영향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부정적인 예측이지만, AI 로 인해 인간의 권리와 의무가 지금보다 낮아지게 된다면, 복제 인간도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상황이 갑작스레 들이닥쳐 사회가 한층 더 혼란에 접어들기 전에, 우리는 AI 뿐만 아니라 복제 인간과 같은 윤리와 과학의 충돌 지점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이 격동의 시대에서 평범한 우리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