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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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소설은, 특히 고전소설은 그것이 등장한 시대 배경과 함께 읽혀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된다. 마치 종이 위에 글을 써서 한편의 책이 완성되듯, 소설은 시대적 배경 위에서 완성이 되고, 둘 중 하나가 없으면 그저 무재(無在) 혹은 낙서에 그칠 수 있다.
일본제국에 의해 물적, 인적 수탈뿐만 아니라 일본어 이외의 언어로는 출판을 할 수 없었던 1900년대 중순, 당시 우리의 문학계는 문학 사조가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 암흑의 시대에 놓여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좌, 우의 이데올로기가 극렬하게 대립하였고, 자신의 이데올로기 이외의 것들은 반공이요 반동이라는 논리 속에서 문학은 이념 대립의 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은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안개 무(霧), 나루 진(津)
주인공 윤희중은 제약회사의 오너 회장의 과부 딸과 결혼하여 젊은 나이에 제약회사의 중역이 된다. 전무이사직에 오를 안건이 상정된 이사회를 앞두고, 그는 아내의 제안으로 고향 무진으로 내려가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윤희중은 무진에서 중학교 동창으로 세무서장으로 근무하는 '조',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후배 박 선생, 그리고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인 하인숙과 술자리를 같이 한다. 술자리를 끝내고 하 선생과 함께 밤길을 걷게 된 윤희중은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는 하 선생의 부탁을 받게 되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한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윤희중은 '조'를 찾아간다. 흰 커버를 씌운 회전의자 위에 자랑스레 앉아 있는 '조'에게 윤희중은 하 선생과 결혼할 거냐고 묻고, 이에 조는 하 선생은 집안이 허술한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안된다는 듯 말한다.
이후 윤희중은 하 선생과 약속한 바닷가 방죽으로 나간다. 그녀를 만나 자신이 병으로 요양하던 바닷가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묘한 감정을 느끼며 하 선생을 반드시 서울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다음날 아침, 윤희중은 서울에서 예상보다 이른 귀가 전보를 받고, 하 선생에게 전해주고자 한 편지를 찢어버리며 무진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무진’이란 장소는 주인공 윤희중의 고향으로, 그가 현실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비일상성의 공간이다. 이 때 윤희중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조’나 하 선생의 모습을 통해 ‘무진’ 역시도 인간군상들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욕망의 각축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마지막 그의 선택을 통해서도 결국 그 역시도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고향 ‘무진’에서 과거의 순수를 회복하고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윤희중은 과거의 본인이 모인, 속물근성과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욕망으로 들끓는 무진을 떠나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현실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다.
어떻게 보면 소설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무기력함에, 그리고 그의 이기적인 욕망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가 담담히, 조용히 서울로 돌아가는 결말 역시도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나온 그 시대에는 윤희중처럼, 다른 모습의 욕망들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꼈을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었을 것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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