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기억 속에서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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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인간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고 자라고 스러진다. 그 삶 동안 많은 인연들이 왔다가 지나가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이별을 경험한다. 이 책을 읽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머리 속에 떠올랐지만 상실의 의미에 대한 것이 가장 위로 떠올랐다. 상실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며 살아가는 환경의 차이로 멀어져 소원해지는 형태도 있지만, 죽음으로써 영영 볼 수 없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상실이란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는 것은 ‘끝’ 그 자체라는 것인데 상실된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끝은 허무를 의미한다. 어차피 끝날 관계라면 그 관계에서 아무 의미도 찾아낼 수 없지 않을까? 삶 역시도 죽음이란 상실이 존재해 타자와의 관계가 단절되는데 삶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상실된 관계는 비록 물리적으로 단절되었더라도, 희미하게나마 기억의 형태로 남아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 상실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한 후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기즈키의 죽음은 단순한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이후 와타나베가 맺는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된다. 특히 기즈키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의 관계는 상실의 슬픔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매개체가 된다. 나오코 역시 기즈키의 죽음이라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처럼 소설 속에서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와타나베는 레이코와 함께 나오코의 애도를 하고 다시 일어날 기운을 얻게 된다. 그저 삶을 선택했기에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고 참아왔던 숨을 토해내듯 미도리를 부른다. 이야기할 게 너무 많다, 온 세계에서 너 말고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미도리가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라고 묻는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는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지만, 인연들의 기억을 품고 삶을 지속해 나간다.
한편, 상실은 단순히 절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다소 우중충한 측면만 부각되지만, 동시에 상실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헤어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은 그 때를 추억하며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상실된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스스로를 반성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즉, 상실은 때로는 깊은 슬픔과 공허함을 남기지만,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며 관계를 맺고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한때 나는 연애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결국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끝이 날 관계인데 사랑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진실된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이별’ 자체에 매몰되어 상대에게 충실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는 연인의 향기가 남아있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연인과 함께한 시간이 내 습관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문득 인식하기도 했고, 이전 연애에서 부족했던 나의 모습을 개선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함께한 시간과 나의 모습이 찬란했던 만큼, 연애의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그 시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는 과거의 ‘나’가 한 층, 한 층 쌓여 올려진 지금의 ‘나’ 역시 부정하는 게 되므로 어느새 연애에 있어서 끝을 생각하며 허무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반대로, 인연 속의 '나'도 상대에게 기억되며 영향을 줄 것을 알기에 연애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와타나베는 처음에 죽음은 삶의 끝에 위치한 것이고, 달리 생각하자면 비로소 죽음이 우리를 붙잡을 때가 아니고서야 죽음은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즈키의 죽음 이후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삶은 죽음이라는 중심에 회오리치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과 가까이 있다. 사자가 생자에게 기억의 형태로 끝없이 영향을 주며 관계가 지속된다. 반대로, 나의 죽음 역시 나와 인연을 맺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에 삶은 단순한 유한한 과정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며 의미를 갖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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