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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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tia ”
- 황경식 著, 「존 롤스 정의론」 를 읽고 -
정의는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논쟁적인 주제다. 누구나 정의를 말하지만, 각자 머릿속에 떠올리는 정의의 모습은 다르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결과의 평등을 정의라고 하고, 누군가는 기회의 공정함을 정의라고 한다. 정의의 정의에 대한 혼란 속에서, 존 롤스(J. Rawls)는 정의를 단순한 가치의 판단 행위 혹은 실현이 아니라, 사회를 설계하는 하나의 원칙으로 바라본다.
롤스의 정의론에서 가장 핵심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이다. 자신의 출신, 능력, 성별, 계층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의 규칙을 정하는 원초적 입장,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합의된 규칙만이 진정한 공정함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 이는 단순한 철학적으로 폐쇄된 계(system)의 실험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겪는 실제 사회의 수많은 불공정 논란 속에서도 유효한 기준이 된다. 누구도 자신의 태생적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 누구도 자신의 태생적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기에, 사회는 그 조건을 이유로 누구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문장 속의 주체 ‘누구’ 가 지칭하는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요즘 현실에서는 쉽게 외면되는 원칙이다.
이러한 불의(不義)에 대해 논하기 전에 롤스의 정의를 조금 더 살펴보자면, 그에게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자유의 평등, 그리고 둘째는 자유의 차등에 대한 원칙이다. 자유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장되는 ‘평등’을 지켜야 하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직 가장 불리한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방향에서만 허용될 수 있다는 ‘차등’의 조건이다. 특히 이 차등의 원칙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라는 윤리적 충고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약자의 조건을 실제로 개선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구조적 정의’에 대한 본질적인 요구와 같다.
그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일까? 안타깝게도, 이 질문조차 어색하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온전한 정의 속에 살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도 온전히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 사회에 정의는 남아 있을까?’ 하며 어딘가에 희미하게라도 살아 있을 정의를 갈구해야 한다. 혼란한 국내의 상황은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정의는 무엇이었는지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다시 찾기도 어렵게 그 존재를 잊어가고 있다. 나라 바깥의 상황도 비슷하다. 과연 무엇이 올바른 정의였는지, 그 정의를 지키던 시간이 정말 올바른 정의를 지켰던 것인지도 모를 만큼 정의로운 사회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된 듯 하다.
이 문제의 시작은 다시, 정의의 정의에 대한 혼란 때문이다. 어떠한 시작점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정의를 그리고 꿈꾸며 이를 향해 나아갔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많은 개인과 모임, 집단과 국가가 하나둘씩 그들만의 생각을 시작했고 결국 정의의 일반적(general)인 의미는 퇴색되고 각각의 목적에 맞는 정의의 사유화(personalized)가 일어난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정의는 다른 누군가에겐 전혀 정의롭지 못하고, 그 정의롭지 못함을 좁히지 않고 서로의 불의로 받아들이기에 결코 이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의(Justice)의 어원은 로마 신화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Justitia)에서 유래하였다. 법원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앞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바로 그 여신이다. 공평으로써 불의를 물리치기 위한 저울과 칼. 그리고 눈을 가린 유스티티아는,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공평하게 판단한다.
그러나, 같은 안대와 저울 그리고 칼을 물려받은 우리는, 서로를 마주하였으나 눈을 가린 채 한 손에 든 칼을 위태롭게 휘두르며 서로의 손에 든 저울의 줄을 끊어버리려 하고 있다.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가끔은, 아직은 내가 이 중대한 정의를 정의해야 할 순간에 서 있지 않음에 안도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대들에게 정의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 또 그대들의 정의는 얼마나 정의로울 수 있는가. 언제 다가올지 모를 그 무거운 순간이 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당신은, 그리고 또 우리는 어떠한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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