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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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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수
댓글 0건 조회 1,939회 작성일 25-03-1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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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소설집

천선란 작가의 ‘어떤 물질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총 8개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인데 그 중 내게 가장 여운을 남겼던 이야기에 대해 감상을 남겨 보고자 한다.

마지막 드라이브

자동차 안전 테스트용 더미는 수십 번에 달하는 사고 상황을 반복한다. 화창한 날 오전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드라이브를 한다. 하지만 노래의 후렴구가 나오기 전, 불행하게도 트럭과 정면충돌을 하고 더미는 연인인 델리를 감싸려 몸을 던지고 그대로 테스트는 종료된다.

‘마지막 드라이브’ 속 세계는 발전된 자율 주행과 추돌 가능성을 감지하여 미리 에어백을 터뜨리는 추돌 예측 시스템으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망률이 존재했고 운전자와 탑승자의 관계로부터 기인한 사망이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운전자가 조수석의 탑승자를 보호하려고 몸을 틀어 상대방을 감싸 안아 에어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부는 좌석 간의 관계를 예측하여 탑승자를 보호하는 추돌 테스트를 진행한다.

더미는 ‘관계 예측 추돌 테스트’를 위해 제작된 안드로이드로 ‘델리’라는 이름의 더미를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었다. 조건을 달리하며 시행된 추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델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고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어 수리를 하는 과정에도 델리의 상태를 묻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에 안드로이드 제작자인 한나는 더미에게 마지막 시험이 끝나기 전에 델리와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하루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한나는 이런 약속을 지키려는 자신의 모습에 의문이 들었지만 결국 약속을 지켜준다. 그렇게 더미는 델리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남산 야경을 보며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나에게 시뮬레이션에서 항상 사고가 일어났던 배경에서 끝까지 드라이브를 해보고 싶다고 부탁한다.

한편, 한나는 더미와 같이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은 하지 않고 잔잔히 흐르는 강 같은 연애를 하고 있다. 학창시절 만난 해리와 친구로 만났다가 연애를 하게 되었다. 해리는 열정적으로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차갑게 식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는 사귀자는 말 한 마디 없이 오랜 연애를 이어오는 해리를 보며 시시한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한나는 시시한 게 나았다. 그렇게 미지근한 나날들을 보내다, 이번에도 역시 미지근하게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을 약속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더미는 프로그래밍된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이 단순한 조작된 감정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감정이 단순한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면, 더미가 델리를 향해 보여준 헌신은 과연 거짓된 것일까?

한편, 이야기 속 한나의 연애는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사랑이다. 우리는 흔히 매체로부터 사랑을 뜨겁고 애틋하며 가끔 잔잔할 지언정 폭발적인 무언가가 존재하는 감정으로 인식한다. 이 점에서 보았을 때는 오히려 한나의 관계가 더욱 기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연 사랑의 바람직한 형태란 무엇인가? 우리는 사랑을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랑이란 것이 본능적인 감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이라면, 안드로이드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란 감정의 정의는 그 형태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한나가 해리와 함께 만들어 나간 관계도 사랑이라 할 수 있고, 더미가 델리를 향해 보인 헌신 역시 그 나름의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감정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란 반드시 생물학적 실체를 가진 존재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피그말리온같이 인형에게, 현대에는 반려로봇, 챗봇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라면, 그것이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너무 좁은 틀 안에서만 정의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이란 꼭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며,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도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마치 한나와 해리의 관계가 정열적이지는 않지만 깊은 신뢰와 이해 속에서 유지되었던 것처럼, 사랑이란 결국 그 감정을 주고받는 존재들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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