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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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낙하산 ”
- 류시화 著,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를 읽고 -
어지러운 연말 그리고 연초를 맞이하였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짧은 시간에 수많은 일이 있었고, 애써 무심한 듯 지내보려 해도 마음은 계속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 사이를 널뛰며 2025년이라는 새해를 맞이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거칠고 딱딱해진 내면을 풀어줄 수 있는 부드럽고 따스한 글 한 편이 그리웠다. 평소에 몇 번 찾아서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책이 눈에 들었다. 마침 내가 이 연구실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독후감을 썼던 23년 3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의 작가 킴벌리 커버거와 관련한 시집을 냈던 작가였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라
“상처가 되는 경험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자기 존재의 방향을 찾기 위해, 즉 삶을 진지하게 살기 위해 당신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온 기회이다.” - W. H. 오든 -
우리는 늘 상처에 취약하고 두려워하며, 이를 치유하는 법에 서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처는 고통을 동반하고, 고통은 겪는다고 좋을 것이 전혀 없다는 인식이 보통의 생각으로 굳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처를 겪고 나서 우리는 스스로가 그 상처를 하나의 성장 계기로 삼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이를 이미 겪고 난 뒤의 안도감에 의해 헛된 미화라 하고, 혹자는 그만큼 극복하고 난 뒤 한층 더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삶의 그물망 안에서 고통의 구간은 축복의 구간과 이어져 있다. 축복의 ‘Blessing’ 은, 프랑스어의 상처 입다 ‘Blesser’ 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 처음부터 고통이 없는 것이 축복일지,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한 상황이 진정한 축복일지는 각자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허나 모두가 분명히 알았으면 하는 건, 지금의 고통에 괴로워하기만 있지 말고 언젠가 다가올 축복의 순간으로 상처 또한 기꺼이 품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고통과 위기의 찰나에 마냥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는 말이 있듯이, 무난한 안락함보단 거친 인생의 순간이 우리의 삶 자체를 더 넓고 더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낙하산 접는 사람
2차세계대전 때 아난드 라는 공군 비행대장이 있었다. 그러다 한 번은 적의 포격에 격추되던 때가 있었지만, 낙하산을 펼쳐 탈출할 수 있었다. 제대 후 고향에 내려가 지내던 중, 카페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경례를 했다. 아난드는 그 남자를 몰랐으나,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비행대장님을 잘 압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 함께 계셨습니다. 전투기가 격추되었을 때 대령님은 낙하산을 타고 안전하게 착륙하셨지요. 그날 낙하산을 접어 대령님 전투기에 설치한 담당 병사가 저였습니다. 무사 생환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낙하산을 접어 주는 사람을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얼마나 낙하산을 접어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머리는 멍해지지만 마음은 뜨거워지는 이야기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떤 고난을 극복한 다음에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가장 먼저 본인의 능력에서 찾는다. 나도 그래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레 접어둔 낙하산을 펼쳤기에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이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판단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그런 판단을 가능하게 준비해 준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란 참 어렵다. 반면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낙하산을 접어 주며, 그 수고스러움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된다. 당신이 그렇게 힘없이 추락할뻔 했을 때, 과연 내가 준비한 낙하산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냐며 괜한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다. 이럴 땐 과연 내가 이 사람을 진심으로 위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낙하산을 접어 두었던 것인지, 이 사람이 추락하기를 바라며 내 낙하산이 펼쳐지기만을 기대했던 것인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그런 마음이 더 드는 것 같다. 요란스럽게 낙하산을 접으며 티를 내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접어두고 되레 펼쳐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마음. 그리고 그렇게 떠나온 다른 곳에서, 혹시나 내가 추락할 때 다른 사람이 접어 둔 낙하산을 타고 살아남게 된다면 그 또한 나처럼 조용히 접어두고 떠나갔으리라 생각하기로.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의 낙하산도 꼭 내가 접어 둔 낙하산처럼 올바르게 펼쳐지기를 기도하는,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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