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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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 문화재가 전시된 상설전시관과 더불어, 매 반기 새로운 테마를 선정하여 이에 관련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학창시절 역사에도 관심이 꽤 있던 나는 이곳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회를 가곤 했는데, 대학에 입학해 대전에 내려온 이후 서울로 갈 일이 많이 없어 자연스레 흥미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명인사들도 많이 간다는 전시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테마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한 급진파 화가들의 작품이다.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비엔나를 유럽의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때 기존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예술가들과는 달리 새로운 예술방식을 추구한 ‘구스타프 클림트’가 큰 명성을 펼치게 된다. 이후 클림트는 자신의 뜻과 맞는 동료들을 모아 ‘비엔나 분리파’를 결성하고 제자들을 발굴한다. 그들의 활동은 오스트리아 예술계에 ‘도전과 실험’이라는 나무를 심게 되었고, 이 나무는 자라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유’라는 열매를 선물하게 된다. 전시회에서는 분리파 예술가들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남긴 작품을 통해 모더니즘으로의 전환 과정을 조명한 듯 보였다. 덕분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등 회화뿐 아니라 포스터, 사진, 공예품 등 당시 흔적이 담긴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시대적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전시회의 시작은 비엔나 분리파의 창시자, 클림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전시회의 끝에는 클림트가 후원한 유망주, ‘에곤 쉴레’ (egon schiele)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에곤 쉴레는 강렬한 표현주의 스타일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대담하게 탐구한 예술가이다. 그는 왜곡된 신체 표현과 과감한 구도를 통해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거부하며, 고독, 죽음, 성적 주제 등 사회적 금기를 솔직하게 작품에 담았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그의 자화상과 드로잉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진실을 날카롭고 독창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고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비록 그는 29세의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요절하였으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술적 유산을 남겼고, 덕분에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창조자이자 창조물입니다. 나의 예술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 에곤 쉴레
전시회를 다 관람한 후, 전체적으로 분리파 화가들에게서 표현주의라는 특징이 많이 보였다. 20세기 이전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나 상징주의와는 또 다른, 인간의 내면과 감정이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한 노력이 많이 보였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제국의 불안한 정치상황과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특히 쉴레는 이 당시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연약하고 불안한 심리를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기 인물화에는 몸짓이 괴롭고 힘이 없으며 절박한 심정이 느껴지고 있다. 다만, 결혼 후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의 그림들을 보면 사람의 체형이 달라지고 몸짓이 여유로워진 것을 보며 그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분리파 예술가 중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이 극단적으로 표현하여 보는 나로 하여금 불쾌함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 그리고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어 인상깊었다.
그들의 작품은 당시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던 나치 지도자로부터 수많은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험정신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으며, 이는 훗날 작품 하나가 수백억 원에 이르는 가치로 인정받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위대한 업적으로 재평가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통의 벽을 넘어 새로운 양식에 도전하며 예술은 시대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한 큐레이터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이끈 선구자라고 말했다. 오늘 내가 접한 ‘비엔나 분리파’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어쩌면 연구자이자 공학자인 나에게도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성을 발휘하는 창의적인 태도가 필요할지 모른다. 비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이를 참고 견디며 내가 하는 분야에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이들처럼 훗날 좋은 평을 받지 않을까 싶다. 전통의 틀을 깨고 자유를 향한 예술을 추구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에 영감과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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