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gezie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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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eziefer
-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
혹시 '바퀴벌레 챌린지'라는 것에 대해 들어 봤는가? 이는 2023년 대한민국에 유행했던 챌린지로, 자신의 지인들에게 "만약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질문을 던진후, 그 반응을 살펴보던 일종의 밈(meme) 이었다. 그 반응을 SNS 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며 즐기는 것이 이 챌린지의 의의였다. 반응은 정말 다양했다. 바퀴벌레라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답을 하는 어머니도 있었고, 말하는 바퀴벌레를 이용하여 돈을 벌겠다는 아버지도 있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는 답을 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질문자들은 상대방에게 감동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바퀴벌레 챌린지'의 질문 내용과 유사하게 벌레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처지의 주인공이 겪는 내용을 다룬 소설이 하나 있다. 그 때문에 챌린지의 열풍과 함께 주목받은 그 소설의 이름은 바로, 20세기 최고의 명작중 하나라고 평가되는 프란츠 카프카의 1915년 작 "변신"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저 '바퀴벌레 챌린지'에서 사람들이 질문했던 것과 같이, 어느날 하루아침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벌레가 되어버린다.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가족들을 부양하던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벌레가 되어 더이상 가족들을 부양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점점 냉랭해진다. 겉으로는 한때 가족이었으니 챙겨주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그레고르를 대하는 자세는 점점 가족을 대하는 것에서 벌레를 대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결국, 한때 가족을 위해 힘썼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 "변신"이라는 소설이 지금까지 명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확한 어휘 사용과 정교함의 끝을 보여 주는 문체, 치밀한 구조적 완결성,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인식이 잘 드러나는 소설의 배경 등등.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명작이라고 평가되는 이유 중 '무한에 가까운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이 소설 "변신" 은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최근까지도 이와 관련된 논문이 출판되기도 하고, 아예 해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추세도 적지 않다. 정해진 해석이 없다는 것으로 인해 이 책이 난해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책 하나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인상과 생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석이 천차만별로 갈리기에, 그만큼 본인의 해석을 거리낌 없이 펼칠 수 있는 책이 이 "변신" 아닐까 싶다.
작가는 주인공 '그레고르'가 변신한 벌레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원문인 독일어에서 '벌레'는 'Ungeziefer'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이는 독충을 뜻하는 'geziefer'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un-'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그 의미를 완벽히 전달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한국어로는 '해충', '갑충', '독충', '벌레'등등 여러가지로 번역된다. 그렇지 않아도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벌레에 'un-'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부정적인 의미를 한층 강화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프란츠 카프카는 작중 '그레고리'가 변신한 그것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서 그런지(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소설의 'Ungeziefer'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보면서, 그것에 대해 퍽 긍정적인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작가가 변신한 그레고르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얘기했듯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역시 그레고르가 변신한 'Ungeziefer'를 사회에서 물질을 생산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 혹은 물질을 생산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으로, 아니 '벌레'로 해석하고 싶다. 이런 해석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내가 물질 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살아서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곧 벌레 공화국이 된다. 저출산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노인인구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비단 노인층만의 얘기는 아니다. 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취업할 의지를 잃어버린 젊은이들, 혹은 그저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주류의 시선으로 봤을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변신"에 나온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우리 사회는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는 그들이 보기에 성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벌레'로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노인들이 많아지고, 취업이 어려워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질 대한민국은 벌레들이 판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수 있지만, 주류의 시선이 그렇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Pew Research Center' 가 2021 년 17개의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가치 1순위로 꼽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물론 물질적 풍요를 2순위로 꼽는 나라도 꽤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물질 만능주의가 심하다는 것을 부정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 물질적 풍요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그랬던 것 처럼 '벌레'로써 취급되어진다.
우리 사회를 인간들의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모두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는 정말 '벌레'로 변했던 것일까? 나는, 그레고르가 정말로 '벌레'로 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를 주변 사람들이 '벌레'로 보았기 때문에 변신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주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중요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벌레'들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것이고, 인간들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물질적 풍요로 대표되는 소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뜻에 따라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물질적 가치, 혹은 조건에 따라 평가하여 사람들을 '벌레'로 변신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와 같은, 생산 능력이 없는 사회 취약 계층은 물질적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그들을 존재 그대로 바라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들에 대한 부양의무 문제는 예로부터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는 사뭇 다른, 인식의 전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최대한 '벌레'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벌레'들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벌레'로 변신할 수 있으니 말이다.
'Ungeziefer'라는 단어는,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가 작가의 친구에게 사용했던 단어였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또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의 눈에 물질적 가치가 없어 보였던 프란츠 카프카의 친구를 멸시하는 용도로 'Ungeziefer'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이랬던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는, 과연 늙어서 모든 생산 능력을 잃고 죽을 날만 기다릴 때가 되었을때, 주변 사람들의 눈에 사람으로 비쳐 보였을까? 아니면 그 또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Ungeziefer'로 '변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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