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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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사 사회
- 송병기 –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이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을 새긴 주사위를 던진다. 그 결과는 ‘우연히’ 누군가의 일상에 들이닥친다. 각자 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주사위를 던진다. ‘행운’을 기대하면서 던지는 주사위다.
작년, 내 일상에도 우연히 보이지 않는 손이 들이닥쳐 주사위를 던졌었다. 일상적인 계단 오르기나, 걷고 뛰는 게 조금씩 어려워졌었는데, 당시 나름 꾸준한 운동과 식단으로 내 건강과 체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시적인 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숨을 못 쉬고 응급실에 가서 꽤 큰 난리를 피우게 된 기억이 있다.
덕분에 그동안 젊다는 이유로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었던 내 건강과 앞으로의 노후, 평범한 일상에 대해 고민을 해볼 수 있던 시기였는데,
내가 가진 보험도 점검하고, 부모님을 안심 시키면서 1인 가구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안들 위주의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었었다.
그러다 이번에 『각자도사 사회』를 읽으며 어떻게 하면 잘 살다가 갈까?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노후의 삶과 죽음의 문제가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노후, 나의 노후 모두 우리 가족과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꾸릴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집안 문제.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인 '각자도사(各自圖死)'라는 말이 어쩌면 냉정하고 조금은 잔혹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삶의 방향을 계획할 때 깊게 염두해 두어야 하는 중요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이 평온하기를 바란다.
신체는 노후 되었더라도, 맑은 정신으로 소중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적당한 때에 깔끔하고 평안하게 떠나게 되는 삶.
별 거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이 평범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젊은 날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노후자금도 마련하고, 질병에 대비해 미리미리 보험도 가입하고, 꾸준한 몸 관리로 건강도 유지하면서, 결혼을 해 화목한 가정도 꾸려야 하고, 사회적 활동도 꾸준히 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준비되면서, 나에게 큰 불운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호상'이라고 불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젊어서 이 모든 걸 준비한 사람들과,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의 노후는 크게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각자도사'라는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전반적인 내용에서 존엄한 삶과 그 마무리를 위해 '죽음'이라는 주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도사(各自圖死) 한다.
저자는 책에서 노화와 질병, 돌봄, 임종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반영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존엄한 돌봄과 임종은 행운이나 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이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편히 떠나는 삶이 좋은 노후 인 것 같지만, 어느 노인에게는 집이 안식처가 아닌 고립과 불편함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최근 의료계의 전공의 파업 사태도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이다. 의도치 않게 수술 일정이 밀리거나, 진료가 취소되는 걸 개인의 운으로 떠넘길 수는 없다.
연명 의료를 둘러싼 환자의 자기 결정권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는 단순히 연장된 삶이 과연 ‘존엄한 삶’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돌봄을 제공해야 할 사람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자원이 부족한 현실은 존엄한 죽음이 그저 이상적인 소망에 그칠 수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다면 존엄사를 도입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한 쪽에서는 존엄사 도입 시 장애인, 노인, 환자들에게 무언의 압박이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생명 존중을 위해 도입되어서는 안되는 정책이라 말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견디기 힘든 고통과 함께 연명 의료를 하는 것이 생명 존중이 맞는지를 반문한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도생하며, 때로는 각자도사한다. 모두가 호상을 위해 행운을 기대하며 주사위를 던지지만, 그 주사위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존엄하게 죽기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
결국 존엄한 돌봄과 죽음이란, 단순히 의료 시스템의 개선이나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 던지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은 책을 읽었음에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더 이상 개인의 운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계속해서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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