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회복하는 인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동욱
댓글 0건 조회 1,701회 작성일 24-11-14 18:40

본문

 독후감을 적어야 하는 것을 보니 또 한달이 흘렀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과연 내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내 계획에 부합하게 행동했던가. 연구나 자기계발에 진전이 있었지만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매번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설령 만족한다 해도 그 기쁨이 채 한 시간을 가지 못하니 사실 아무렴 상관없다. 지난 한 달을 살면서 유일하게 특별했던 점은 한동안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날씨가 선선해서 같이 걷고, 커피도 마시고, 또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내 세상이 참으로 좁다는 것을 실감한다. 매일 쳇바퀴같이 돌아가는 하루 일과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한 우물을 파다 보니 내 스스로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양한 사람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하다 보니 요즘 문득 시야가 좁아진 것을 체감하는 중이다.


 고등학교 친구와 종묘를 들렀다가, 단풍으로 수놓아진 서순라길을 따라 걸었다. 안국역을 지나, 북촌 꼭대기에 가서 한옥을 보기도 하고 오설록 카페에 들러  작설차를 우려 마셨다. 이 날 다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많이 걸었다. 안국을 거쳐 광화문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마침 시위날이라 엄청난 인파와 함성 소리에 등떠밀려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게되었다. 공황장애를 일으킬만큼 시끄러운 소음과 재빠르게 지나가는 사람과는 다르게 서점 안은 고요하고 안온했다. 밖의 사람들은 공통된 세상을 꿈꾸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고, 서점 안 사람들은 고요히 저마다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경제, 경영 분야 도서로 발걸음을 옮겼겠지만, 이번만큼은 노벨문학상으로 유명해진 한강 코너로 갔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디 에센셜 ; 한강". 한강 작가의 산문, 시, 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책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조심히 읽어내려갔다. 문장들 속에는 따스함과 수수함, 그리고 공허함이 묻어나왔다. 담백하게 적으면서도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지는 것은 작가 의도한 것일까 내 마음이 공허해서일까. 여러 글들 중에 인상 깊게 읽은 시가 있어 적어본다.


 

회복하는 인간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의 시를 읽으며, 문득 내 일상의 한 순간들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매일 아침의 찬 공기, 유리잔에 남아 있는 커피 자국, 퇴근길에 스치는 가로등 불빛. 이 모든 장면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에 늘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이룬 것들은 생각치 않고 이뤄야할 것들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하고 내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된다. 일상들이 모여 미래를 만드는 것인데, 그 일상들 조차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 성취가 나중에 값지게 느껴질까. 밥을 먹듯이 내 일상 하나하나를 씹어 넘기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취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