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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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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2,098회 작성일 24-11-1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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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레퀴엠


 레퀴엠 ‘Requiem’ 이란, 서양에서 장례미사 때 쓰이는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으며, 라틴어로 ‘안식’을 뜻한다. 이렇기에, 주로 종교적인 성향의 음악이다보니 다른 교향곡과 달리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 음악성 때문인지 예외적으로 세기의 음악이라고 회자되고 있다. 이 곡은 총 5부 14곡으로 구성되며, 미사곡이기에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무겁고 불길하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 속 오르간의 반주가 이어지면, 다른 관현악 악기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이내 성가대에서 심오한 분위기로 합창을 이어나간다. 말로만 들어서는 사실 다른 교향곡들처럼 화려한 구성으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되게 지루할 법하지만, 그 멜로디가 매우 음악성이 좋고 현대인들이 듣기에도 짜임새 있게 이루어져 있다. 특히, 남성 파트와 여성 파트가 대비되어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을 묘사하는 듯한 구간들은, 가히 압권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여러 동영상의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이고 있기에 처음 듣는 사람도 어딘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일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 미사곡은 모차르트 자신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며, 자신이 마무리하지 못하고 제자인 ‘쥐스마이어’에 의해 마무리되어 여러 논란이 있는 곡이기도 하다. 사실, 거액의 도박빚을 지고 있던 모차르트는 주변 백작에게 거액의 보상을 대가로 이 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모차르트 자신의 미사곡이라고 생각하며 작곡하였으나, 여러 작품을 동시에 병행하며 건강이 악화된 그는 결국 완성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제자에게 작곡 방향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의 악보를 넘겨보다가 많이 울기도 했다는 그에게 이 곡은 상당히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순전히 모차르트 혼자서 이 곡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곡의 평가가 조금씩 갈리기도 한다. Lacrimosa 부분은 모차르트가 첫 8마디만 작곡을 하였다고 하는데,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작곡했다고 알려진 부분만 연주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 곡의 작품성을 폄하하기도 한다. 이는 내 생각엔 너무 오버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곡은 모차르트의 최측근이 그의 음악적 스타일을 최대한 반영해 곡을 완성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그 곡의 완성도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즉, 음악을 평가할 때는 그가 직접 작곡을 했느냐가 아닌, 단순히 음악성만으로 곡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로 따지자면, 낮은 저널에 낸 논문이라고 해서 그걸 무조건 인정하지 않기보단, 연구 자체의 완성도를 따져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주장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음악적인 요소만 살펴봤으니 다른 부분도 살펴보자면, 성당 미사곡인만큼 가사 자체도 굉장히 종교적이다. 이 중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눈물의 날(Lacrimosa)’의 경우, 죽은 후 천국에 가서 신에게 심팔을 받을 때, 자신의 죄를 발견하더라도 한 번만 더 은총과 자비를 간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Confutatis maledictis (악인들을 골라내어)

flammis acribus addictis, (화염 속에 던지실제)

voca me cum benedictis. (내겐 축복 베푸소서)


Oro supplex et acclinis, (겸손되이 구하오니)

cor contritum quasi cinis, (마음 태워 재가 되고)

gere curam mei finis. (나의 종말 돌보소서)


Lacrimosa dies illa, (눈물의 날 심판받을)

qua resurget ex favilla (죄인들이 부활하면)

judicandus homo reus. (주님 자비 베푸소서)


 사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이외에도 많은 미사곡에서는 신께 은총을 바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내 주변에서 하나 둘 씩, 그리고 내 또래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은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타의 모범이 되고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안타까운 소식들은 참 불편하기만 하다. 진짜로 신이 사람의 행실을 보고 운명을 결정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차별점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한 사회적 활동이다.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선 이타적인 자세를 가지고 남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기에, 앞에 나서서 남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으나, 모난 점 없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즉 백성들의 비율은 역사적으로도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왕보다 더 높은 존재인 신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신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고, 그가 우리를 계속 보고있기에 남들을 많이 돕고 그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다면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종교를 믿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처지 속 이를 뒤집어 줄 기적들이 일어나길 바라고, 실제로 이러한 일이 우연치 않게 발생했을 때 느끼는 감사함은 종교에 대한 확신을 더욱 주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퀴엠은 실제로 죽은 이에게 신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고 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지만, 추모하는 이들의 굳센 믿음이 죽은 이에게도 행해지길 바라는, 즉 죽은 이에게 갖추는 마지막 예의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종교를 믿지 않는 나로서는 이러한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실제로 내 삶에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굳센 믿음을 지키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란 희망이 우리의 지친 삶에 조그만 원동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주식과 복권이 그동안의 내 삶에 이와 같은 의미였지만, 이보다 더한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에 믿음을 가진다면 좀 더 내 삶에 긍정적인 것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설령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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