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는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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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유니버스
- 송은주 -
옛날 여성들에게 드레스는 단순히 옷의 의미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나타내는 수단이었으며, 나아가 그들의 취향과 욕망, 그리고 가치관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여성들이 입은 ‘하나’의 드레스는 어떤 ‘하나의 세계’를 의미할 수 있기에, 저자는 각 소설 속 여주인공들을 설명한 내용을 통해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이 책의 제목을 ‘드레스는 유니버스’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책은 영문학 소설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해 온 저자가 그동안 번역한 고전소설 중 자신이 좋아했던, 그리고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골라 자기의 생각을 담아 이야기하는 일종의 문학 비평서이다. [제인 에어] 속 여주인공 ‘제인 에어’, [위대한 개츠비] 속 여주인공 ‘데이지 페이 뷰캐넌’, [마담 보바리] 속 여주인공 ‘마담 보바리’ 등, 총 8개의 소설 속 여주인공의 삶을 묘사하고 자신의 견해를 더해 책의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데, 그 방식이 참 흥미롭다.
고전소설 속에서 묘사한 이들은 용감하기도 하지만, 무모하고, 미련하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요상한 선택지만 쏙쏙 골라 읽는 나로 하여금 탄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만, 실제 고전 속 여주인공 대부분은 수많은 시대적 한계와 제약 속에 갇혀 있고, 그들이 한 행동들은 그들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때, 작가는 수많은 번역을 해오며 얻은 노하우와 작품 해석 프리즘을 통해 독자들이 캐치하지 못한 여주인공들의 성격과 가치관을 간파하고, 이를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들과 비교하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다르다지만, 결국 인간의 본능과 감정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건 동일하기에 그들의 성격은 우리와 비슷할 것이다. 즉, 처음 고전소설을 읽었을 때는 답답하기만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상황에 처했어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란 설득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결국, 그렇기에 이들은 우리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 인상깊은 부분들은 딱 두가지, 바로 [마담 보바리] 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내용이다.
《마담 보바리》는 중세 프랑스를 배경으로 평범한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한 에마 보바리가 이상적이고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불행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에마는 평소 로맨스 소설에 영향을 받아 화려한 도시 생활과 낭만적 사랑을 동경하였고, 결혼 생활의 무료함 속에서 불륜과 사치로 일탈을 시도한다. 그러나 연인들에게 배신당하고, 사치로 인해 경제적으로 파산하며 결국 절망 속에서 독약을 먹고 생을 마감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에 전시된 타인의 온갖 욕망에 포위당한 우리는 에마의 후손이다. 에마는, 우리는,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그러므로 무슨 수를 써도 나의 욕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은 채 텅 비어있다.”
에마는 자신도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흐릿하고 모호한, 그래서 더욱 허영심에 찌들어 절실하고 강렬한 허구의 욕망을 평생토록 쫓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다. 작가는 SNS상의 타인의 욕망에 포위된 우리가 로맨스소설 속 주인공을 닮고 싶어서 쇼핑에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에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에마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SNS 때문에 사람들의 허영심이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하지만, 작가의 해석을 보면 꼭 허영심이란 개념이 최근에 정립된 개념이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이에 공감하기에, 에마가 왜 이런 결말을 맞이했는지 그 감정이 조금 이해가 된다.
다음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부유하지만 외로운 제이 개츠비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개츠비는 과거 연인 데이지와 다시 재회하기 위해 부자가 되어 나타났지만, 그녀는 남편 톰을 떠나지 못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중 데이지가 운전 중 실수로 톰의 상간녀를 치어 죽이고, 그녀를 위해 범쥐를 뒤집어쓴 개츠비는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 부자가 되어 화려하고 호화로운 그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장례식은 외롭고 쓸쓸하게 끝난다.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는 무정하고 차가운 미녀에게 순정을 다 바치다 못해 끝내 목숨까지 바치는 호구의 이야기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여자 보는 눈도 없는 호구가 왜 위대한가.”
개츠비와 데이지를 향해선 작가가 느끼는 그대로 필터링 없이 이야기한다. 단순히 명작이라는 틀에서 내용을 읽었을 때는 개츠비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 나도 그에 대해 함부로 비판해도 될까 망설여지지만, 저자마저 신랄하게 비평하는 구절들을 읽으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이상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며 속이 시원해진다. 단순히 주인공만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비교하는 작가의 관점을 본받아 생각해보면, 자신의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개츠비의 모습이 이 시국 속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책을 읽다보니, 이 글을 쓴 작가의 인터뷰도 따로 찾아보았다. 영문학 박사학위와 함께 이화여대 교수로도 제직중인 작가는 고전문학을 통해 인간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도 결국 허황된 착각이라고 말한다.
"고전은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았고 많이 알아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고 답을 내릴 수도 없는 인간이라는 심연을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그 심연 속에서 답을 꺼내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가늠할 수도 없이 깊고 어두운지 보게 하는 것, 그 앞에서 이해하고 답할 수 없는 나의 무능을 겸허히 인정하게 하는 것이 고전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은 그가 책에서 보여준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소설이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각 말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내 삶에 맞게 수용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지나치게 허황된 목표를 세워 좌절했을 때도 최소한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책에서 주는 메시지이자 삶의 지혜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위해, 나는 앞으로도 내게 주는 수많은 메시지를 마주하기 위해 책을 꾸준히 읽어나갈 것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나는 아직도 고칠 점이 많은 존재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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