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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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은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이 치러지는 날로, 온 국민이 수험생들의 건투를 비루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특별한 날이다. 그런 날 내가 항상 확인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각 과목별 등급 컷이 아닐 뿐만 아니라 무슨 문제가 수험생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 위한 컬러 문항으로 출제됐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험생이던 내가 인생이 걸려 있다는 공포와 긴장감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던, 본격적인 문제 풀이를 시작하기 전 매 과목마다 필사를 해야하는 필적 확인 문구이다. 그리고 찾아본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적 확인 문구는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로, 이 짧고 평범한 한마디는 나로 하여금 양광모 시인의 시집을 골라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중략)
살아가는 게 슬프면 좀 어때, 눈물 흘리면 되지
눈물 좀 흘리면 어때, 어차피 울며 태어났잖아”
무던하다, 이 단어는 나를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평소 희미한 불빛만 있어도 잠을 설쳐, 암막 커튼과 차단 스티커로 어떻게든 철저히 어둠을 만들어야만 잠이 들 정도였으니까. 이런 예민함은 연구와 실험을 함에 있어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때론 무언가를 할 때, 상당한 준비를 해야만 시작하게 됐고, 그로 인해 생긴 강박증은 무언가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피로감을 안겨주곤 했다. 티끌과도 같은 오류가 있는 것을 용납하기 싫어서였을까? 나는 몰랐다. 삶이라는 나무에는 실수조차도 하나의 열매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완벽히 준비된 상황에서 찾아오는 손님이라기 보단,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처럼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맞닥뜨린 절벽을 뛰어내리는 모험이 더 많다는 것을. 우산을 챙기지 못해 피할 수 있던 비를 맞게 될 때, 준비하지 않은 나를 자책하기보다는 내일 따스하게 빚출 햇볕에 옷을 말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돼보고자 한다. 실패로 얼룩져 완벽하지 않는 날에도 어차피 삶은 그 자체로 예상 밖의 무수히 많은 호기심이 가득한 일들로 가득한 여정이며, 실패란 접는 시간보다 날아다니는 시간이 짧은 종이 비행기와 다르지 아니하니까.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중략)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2년여 간의 군복무를 마친 대부분의 남자들은 엄동설한 폭설 속에서 제설작전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 그저 눈을 치우는 단순한 노동으로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뿐더러, 작전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하다는 명목하에 눈을 치우는 작업을 하던 도중, 내가 치운 길 위에 다시 쓸어야 할 소복히 쌓인 눈을 보고 있자면 ‘덧없다.’ 라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오곤 했다. 하지만 꽁꽁 언 손으로 쥔 빗자루로 묵묵히 눈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찾아온 새벽과 함께 눈이 그치게 되는데, 희미한 햇살로 빚춰진 치워진 길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스레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신 하고 싶지 않은 이 경험은, 발버둥을 쳐도 금세 눈으로 덮여 시야에서 사라지는 길처럼 막막하고 불분명한 미래를 마주할 때 엄습 해오는 두려움 속에서도 버티고 견뎌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아무리 눈이 내린다고 한들, 그 길은 눈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어제도 그랬듯이 내일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때로는 삶 역시 어둠과 고난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밝혀야 할 그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10년 전 입김이 나오는 한밤 끝 중에 묵묵히 쓸었던 것처럼, 내가 언젠가 걸어가야 할 길이 드러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눈을 치우는 나에 대한 믿음과 인내인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는
이이란 것을”
비보다는 눈이 내리는게 당연한 계절이 다가온 지금, 봄에 화사한 꽃을 피우기 위해 봉우리 속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자연처럼, 나도 그리고 여러분도 결국 언젠가 지나갈 12월 1월의 추위를 이 시와 함께 뜨겁게 이겨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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