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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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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1,829회 작성일 24-11-04 12:35

본문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시는 어떨지 궁금하여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라는 시집을 읽게 되었다. 이 시집은 한강 작가의 첫 시집이며 위의 시는 한강 작가의 첫 시집의 첫 번째 수록 작품이다. 시집에서 처음으로 수록된 작품은 작가 본인의 분신 같은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더 유심하게 봤었던 것 같다.

 

 따뜻한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언가는 영원히 지나가버렸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한다.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 시간, 추억, 그리고 삶의 느낌처럼 과거에 묻히는 모든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나가는 것들이 슬픔이건 기쁨이건, 결국 밥을 먹는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가 아닐까.

 

 나는 주말에 한 끼 정도 밥을 직접 해 먹는다. 밥을 먹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져 있는 쌀알을 보며 커다란 쌀알이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다. 쌀알이 주먹만 하다면 한 톨만으로도 밥을 지을 수 있겠지, 편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잘한 밥알을 씹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감각도, 실수로 흘린 밥알을 주워 먹는 작은 일상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 사소한 일상들이 바로 우리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것이다.

 

 가을이 지나고 있다. 혹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가을에도 우리는 여전히 밥을 먹고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침에는 아침을, 점심에는 점심을 먹으며, 그렇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아도 결국은 영원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짓고, 먹고, 씹는 순간들은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우리의 작은 저항이자, 다시 돌아오는 일상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시는 마치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도 결국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사이를 오가는 듯하다. 영원할 때까지만, 영원히. 영원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밥상 위의 한 끼로 돌아와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가 던진 질문을 내 삶 속에서도 마주하게 되었다. 지나가버리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하는 마음, 그러나 결국은 밥을 먹고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놓아버릴지, 그 선택에 따라 삶의 무게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가을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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