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사슴벌레식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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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정원’의 20주기를 맞아 ‘부영’과 ‘경애’를 대화방에 초대하는 ‘나(준희)’에 대한 것으로 시작된다. 한 때 누구보다 친했던 이 4명이건만, 1명의 부재와 아무런 말이 없고 정원의 추모 모임 또한 준희밖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그리고 자살한 정원의 대학 시절 서클 친구들과 대학원 친구들과의 이런저런 사담으로 이어진다. 4인방은 대학 시절 한 하숙집에서 지내며 어울려 다녔다. 4명이서 어느 시골의 펜션으로 여행을 갔었던 날, 정교사 임용이 되고 교사 생활을 하던 정원이 느닷없이 교사를 그만두고 연극을 하기 위해 예술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을 듣고 만류하는, 그런 와중에 오갔던 언쟁이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이러한 문답을 ‘사슴벌레식 문답’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보수 공사를 완료한 펜션 안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온 사슴벌레를 보고 지었다고. 어디로 들어오냐는 물음에, “어디로든 들어온다.” 라는 주인장의 말이 와닿아서 그랬다고 한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 본문 中
군 시절, 소위 ‘짬’을 어느 정도 먹었다고 인정받는 꺾인 상병 (부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상병 진급 후 4개월이 지나면 꺾였다고 하면서 병장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때부터 마음이 잘 맞는 동기 2명과 2기수 아래 후임 두 명이서 매일 같이 어울려 다니곤 했다. 같이 운동하고, 밥이 잘 나오지 않는 날엔 (우리 부대는 식사가 끔찍하게 맛이 없기로 악명이 높았다. 예비군 훈련 때 훈련 마지막 날 한 예비군이 북한군도 아니고 이게 뭐냐는 민원을 넣었을 정도로.) 군내 매점에서 냉동 치킨을 돌려 먹고는 했다.
시간이 흘러 전역을 하고 나서 학부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을 즈음, 전역 후 별로 연락이 없던 차에 느닷없이 그 때 4인방 중 한 명이었던 후임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편찮으신지라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느냐고. 잠시 대답을 보류해둔 사이 같이 지내던 동기와, 그 밖에 후임 몇 명에게도 연락이 오는 것이었다. ‘형, 혹시 연락 받으셨어요? 연락 받으셨으면 절대 빌려주지 마세요. 걔, 요새 도박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 돌아요.‘ 결국 적당히 거절하고 나서는 현재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최근에 한 명이 상을 당했을 때도 그 녀석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부디 그 좋지 않은 소문이 소문으로 그쳤으면 좋겠건만, 영영 알 길은 없을 듯 싶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 중 하나로, “지인들 사이에서 들리는 이야기 중 부정적인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모두가 비슷해 보였건만, 사회에 내던져지는 순간 모든 것이 차이가 나고, 격차가 생기고, 때가 타기 시작한다. 소설 <사슴벌레식 문답> 의 작가 권여선은 대학 시절 같은 하숙집에서 동고동락 하면서 지내던 4인방 ‘준희’, ‘부영’, ‘경애’, 그리고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그 때 이후로 지금껏 얼마나 많이 바뀌었느냐고. 같이 대학 시절을 지낼 때만 해도 즐겁게 술을 들이켜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다니던 사람들이, 10년 뒤 한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한 명은 남은 두 명을 배신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는지, 왜 지금이 우리가 되었는 지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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