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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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성경의 첫 구절,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이 문장에서 우리는 "가라사대"라는 단어를 만난다.
이 고귀하고 장엄한 말씀, 세상을 창조하는 신의 언어는
언젠가부터 우리를 옥죄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가라사대"의 어원은 한국의 고어로, 매우 오래된 용어이다.
이 표현은 조선시대의 문헌에서 자주 발견된다.
"가로-"는 "말하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 어근이며,
"-사"는 높임의 의미를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이다.
즉, "감히 말하노니", 누군가가, 높은 존재가 감히 말하노니, 이렇게 하라는 지시의 의미가 겹겹이 쌓인 단어이다.
이 단어는 현대 한국어에서는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격식 있는 문어체, 또는 고어의 느낌을 살리고 싶을 때 많이 사용되는 단어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항상 수많은 "가라사대"에 휘둘리며 살아왔다.
아침, 메일함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문구.
"가라사대, 이번 주까지 실적을 올리라"
위에서 내려온 메일의 내용.
하지만 어떻게?
방법은 제시 없이, 마냥 목표만 던져주는 그들.
우리는 그들의 요청을 맹목적으로 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경험이라 생각하며.
그러나, 언젠가부터 방향은 사라지고, 뭉툭해진 화살표 같은, 그런 나날들이 이어진다.
"가라사대".
......
"가라사대"
......
......
......
......
......
"가라사대".
......
......
......
......
......
......
......
쉼 없이 내리누른다.
잠시 숨을 고를 시간도 주지 않는다.
점심시간, 잠시 한숨을 돌리려 카페에 들어슨다.
숨을 돌릴 공간 조차도,"가라사대"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대화.
"가라사대,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면 잘 될 거야."
웃음 섞인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무겁기만 하다.
오후의 미팅, 또다시 울려 퍼지는 "가라사대"
그들은 말한다. 이대로만 하면 된다고.
내가 말한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이대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늦은 퇴근길, 담배를 피며 오늘도 머리속에 울린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위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져."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집에 돌아와 거울을 바라본다. 온종일 '가라사대'에 휘둘린 나의 모습.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가슴이 마냥 부풀어 오르고, 빛나는 내일을 기대하던 그 시절의 나.
아픔도, 그리고 상처와 실패도 경험이라 생각했던 나.
사람과의 만남에서 배신과 상처를 느꼈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나.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언젠가부터 타인의 말과 조언이 마냥 집착과 강요로 느껴진다.
더 이상 그 속에서 진심 어린 관심이나 애정을 찾기 힘들다.
모든 "가라사대"가
나를 옥죄는 사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끊임없이 타인의 "가라사대"에 휘둘리며,
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나의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이 삶.
과연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삶이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자신의 "가라사대"를 되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라사대,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가라사대, 나는 나의 가치를 믿는다."
"가라사대, 나는 나의 목소리를 낸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균형잡기의 연속일 것이다.
타인의 말과 나의 생각 사이에서,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현실의 한계와 이상의 꿈 사이에서.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리만의 "가라사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완벽한 해답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마법 같은 순간도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 다시 한 번 거울 속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지친 모습이지만, 눈빛에는 작은 불씨가 보인다.
내일은 조금 더 나를 위해 살아보리라.
내일은 조금 더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리라.
"가라사대, 나는 나다."
작게 중얼거리며, 나는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가라사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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