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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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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1,699회 작성일 24-10-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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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이정모 지음


46억년의 지구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표현하자면,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은 23시 59분 55초로, 인류가 등장하는 30만년 전은 지구 전체의 역사로 볼 때 고작 5초 전에 불과하다. 시야를 더 넓혀서 137억 살인 우주의 관점으로 볼 때 인류가 존재해온 역사는 정말 찰나인 것이다. 나는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나 자연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미 다섯 차례나 멸종을 겪고 난 지구 어느 곳에서 앉아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어져 가는 과거의 흔적들이나 산업혁명 이후 점점 탁하고 흐릿해지는 밤하늘의 별빛을 신중히 바라보며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생생히 그려내는 일을 하는 그들이 그저 낭만 있고 존경스럽다. 


국내의 여러 유수의 자연사박물관장, 과학관장을 지냈던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제 막 교장 연수를 받는 교감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물었다.

“교감 선생님 여러분, 여러분이 교장이 되려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나요?”

교감 선생님들은 “인성을 쌓아야 해요”, “전문성을 키워야 해요”, “교장 자격을 취득해야 해요” 등의 답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조건이 빠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죠. 여러분이 계시는 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 먼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교장 자격을 아무리 갖춰도 빈자리가 없으면 새로운 교장이 등장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려면 원래 있던 게 사라져야 한다. 이 익숙한 대목을 읽으며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원래 앉아있던 사람이 내려와야만 한다라는 이런 이야기는 사실 나이를 먹고 사회를 겪어가며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것은 이미 인류가 존재해오기 이전부터 만연했던 진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빈자리가 있어야 하며, 그 빈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전 세대들은 멸종해야 한다. 멸종이란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는 이미 인류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실행되어 오고 있었다.


 저자는 제목에서도 밝혔듯, 이러한 멸종이 찬란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다. 멸종한 이전 당사자는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앞서 지구를 지배했던 거대한 공룡들이 멸종했기에 우리 인간이 현재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필요도 없이 번성할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커다란 뇌, 직립보행, 자유로운 손과 노동, 불의 사용은 인류가 지구를 빠르게 지배하는 원동력이 됐고, 정말 운이 좋게도 지구는 때마침 인류가 농사를 짓고 살기에 딱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주어 이전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서두에서 밝혔던 것과 같이 굉장히 찰나의 순간에 인류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빠른 발전속도 만큼이나 멸종을 향해서도 굉장히 빠르게 질주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에 세상을 떠났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100년 이내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불길한 유언을 남겼다.


 자연사를 살펴보면, 앞선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서는 급작스런 기온변동, 화산폭발로 인한 대기 산성화, 산소 농도의 하락, 이 세가지가 대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변화의 규모도 중요했지만 생명체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 속도도 한몫을 했다. 그런데 이런 급작스런 변화의 원인은 모두 지구적 또는 우주적 사건이었다. 대륙이 합쳐지든지, 화산이 터진다든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좀 다르다. 여섯 번째 지구에 살고 있는 현 인류가 만일 예측보다 빠른 시간 내에 멸종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 활동이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식지 파괴, 사냥과 낚시를 통한 생물 종의 착취, 대기/수질/토양 오염 등으로 인해 인위적인 기후변화로 우리는 스스로 멸종을 향해 질주한다.


 실제로 내가 지내는 이곳 날씨가 몇 년 사이에 이상해졌다.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더웠고, 특히 몇 년 전 추석을 시원하게 보냈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 추석은 유달리 더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말 사이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몸이 적응할 시간이 짧았던 탓인지 감기에 쉽게 걸렸다. 농담삼아 던지는 말이지만, 날씨가 정말 미쳤다.

나는 멸종을 앞당기는 요소로 인간의 과시욕, 허영심,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이기심, 우울, 불안도 크게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와 SNS가 발전한 탓도 있겠지만 요즘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뉴스를 쉽게 접한다. 심지어 출산율도 하락했다. 이런 것들이 지구의 역사를 비추어 봤을 때,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종의 멸망 시나리오가 맞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애써 아닐 것이라고 간절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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