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커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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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제와 크게 상이하지 아니한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이란 보편적으로 지내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편안하다’, 혹은 ‘단조롭다’라는 말로 쉽게 정의될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부터일까? 특별함이 사라졌다고 느껴진 나의 평범한 일상은 점차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제와 같은 고민을 하고, 전조가 없다면 내일도 같은 주제로 고민을 되풀이해야 하는 내 일상은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듯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듯한 하루하루를 반복해서 보낼수록, 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간과하며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무료한 일상 속 한 작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근래 정신없는 일과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가지며 핸드드립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빈번히 가지곤 했다. 그리곤 어느 날 무심코 복기해본 한잔의 커피가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은 커피가 그저 그런 음료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원두 봉투를 열고, 정확한 무게 만큼의 원두를 담기 위해 한알 한알 톡톡 조심스럽게 담는 손길. 정성스레 갈아낸 커피 가루를 필터에 고이 담고, 정량의 물을 차근차근 부어주면서 커피 표면을 살포시 휘저어가며 풍미가 가득한 커피 한잔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순간까지. 무심히 일상을 쉬이 흘려보낸 내 앞에 한 방울 한 방울 온갖 정성을 다해 내려져 왼성이 된 커피가 놓아졌을 때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 일상을 음미하기 위해 이렇게 세심한 정성을 들이고 있을까? 생각건대 그러지 않았다.
일상에 커피의 문화가 잘 스며들어있는 유럽에서는 손잡이가 없고 일반적인 잔보다 두께가 두꺼운 데미타스라는 커피 잔을 사용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커피 잔을 조심스레 쥐게하여 손끝에 전해지는 온도를 느끼도록 해주며 빠르게 식는 것을 방지하고 한 모금씩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넘김으로써 아우러져 다가오는 향과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천천히 식어가는 커피를 느끼게 해주는 데미타스는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음미하게 해주는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의미가 내재 된 커피마저 어느 정도 빨리 마실 수 있게끔 입김을 불어 식히거나, 뜨겁게 달아오른 커피 잔을 찬물로 살짝 적신 휴지를 둘러싸 식히곤 했다. 내 하루조차 음미하지 못하는 내게 커피의 온도와 향을 느낀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다.
어떻게 바라보면 우리가 하는 실험, 연구 또한 한잔의 커피와 닮아있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섬세하고 면밀한 노력의 과정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그 속의 노력과 인내는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어떠한 것보다 비중 있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이라고 해서 심오하거나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중에 무심코 돌아본 나의 삶 속에 어느 정도의 농도인 정성이 하루하루가 담겨 있는지 따라 내 인생의 깊이와 향이 결정된다. 빨리라는 압박감에 급하게 흘려보내고 간과하던 삶을 대하는 내 태도를 새롭게 다듬을 수 있는 전환점이었다.
학위 과정을 시작하면서 삶의 패턴 그리고 주로 보내는 장소를 고려했을 때, 연구는 내 인생에서 51% 정도를 차지하는 듯하다. 100%는 아니지만 반 이상, 절반 이상은 나에게 있어 큰 의미이다. 누군가에게 1%는 사소하고 별게 아닐 수 있지만, 내 인생에 있어 1% 라는 비중은 분명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1%가 더해진 노력이 담겨 있지만 훗날 학위 과정 후에 내 인생 속에서의 연구가 1%가 늘어난 52% 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일상과 연구, 모두를 차근차근 더 깊이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 있는 변화로 채워 나가면서.
“커피방울이 톡톡 서버에 부딪히는 소리,
드립포트에서 조르륵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보통 소란스러운 카페에서는 손님들의 말소리와 온갖 기계소음,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에 파묻혀 작게 울리는 소리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내려지는 커피를 바라보면 금세 기분 좋은 소리,
그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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