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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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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1,597회 작성일 24-10-1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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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나는 그 남자의 집에 초대되었다."

"업로드되면 그들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게 돼. 자기의 정신과 몸, 둘 사이의 협응까지 완벽하게 홀로그램으로 구현해낼 수 있으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도 모두 할 수 있고. 홀로그램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이거든."


데이터로 만든 기억과 정신을 온라인 세계로 옮겨 육신 없이 영생하는 세상. 생전의 모든 기억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육신으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상 세계 '롤라'의 등장이 임박하고, '롤라' 행 티켓이 유심 형태로 무작위로 뿌려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티켓을 찾으려는 자, 거래하려는 자, 빼앗으려는 자들이 물밑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온라인 세계로 구현된 영원한 천국에서 과연 인간은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물음이 이 소설의 주제다.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뿐이야.” 


과학의 계속된 발전으로 인류의 욕망은 점점 더 쉽고 간편히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등장인물이 말하듯,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고 이는 비가역적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더 많은 욕망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충족할 것이다. 마치 이 책은 인간을 위해 극도로 발전된 과학은 과연 인간의 완전히 충족된 욕망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라고 묻는 것 같다. 시간, 공간적 제약을 극복한 세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인류의 욕망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며 내린 결론은 '성취욕' 이었다. 노력하여 성취하는 기쁨을 과학 기술이 채워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력은 자발적인 고통이 필연적이다. 이를 극복하고 얻어내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기쁨이다. 자발적으로 고통을 견디는 모순되는 행위를 통해 이뤄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수반되기에 과학 기술이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을 고통과 희생을 통해 이뤄내야 한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나 보다.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위 대사에서 알아볼 수 있듯, 제목과 달리 영원한 천국은 없다는 게 작가의 생각으로 읽힌다. 앞서 밝힌 나의 생각과 유사하지만 더 우아하게 표현한 듯하다. '롤라' 같은 세상에서 산다고 해도, 인간은 끝까지 자기 욕망을 끌어안고 버티며 괴로워할 존재이며 인간은 설계된 안락한 삶 속에서도 끝끝내 설계도 밖을 벗어나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더불어 그런 '야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외친다. 동시에 책이 마무리되며 우리가 '야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과학 기술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전한다고 주장하지만 가치중립적이며 양날의 검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과학기술은 어쩌면 인간의 야성을 희미하게 만들지 않을까, 아무리 편한 세상을 살아도 행복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 아닐까 생각든다. 과학의 가치는 인간이 정하는 것이며 그 책임은 오롯이 인간에게 주어진다.


“넌 네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싶냐? 나는 모르고 싶다.“ 


나는 내 삶의 불확실성에 힘들어하곤 했다.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옳게 흘러가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후회도 한다. 위 구절은 내가 힘겨워했던 불확실성에 행복의 의미를 더해주는 듯하다. 한치 앞길 보이지 않는 동굴 안에서 암순응 후 보는 햇빛이 눈부신 것처럼, 나의 성취로 인한 기쁨은 노력으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불확실성도 부여해 준다고 생각 들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고통과 불확실성은 나의 야성을 자극시키는 촉발제였다. 고통을 이기기 위한, 불확실성을 확실한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망이 나를 만들었고 이 욕망은 시대가 흐름에,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힘들어왔고 행복했다. 이러한 나의 욕망, 작자가 말하는 분명한 '야성'이다. 지금도 힘든 순간이 있지만 반드시 마주할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며 살고 있음을 자각한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격언을 되새기며 고통과 불확실성을 야성으로써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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