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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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유행했던 드라마 “미생”에서는, 원래 바둑 프로기사를 지망하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어느 대기업 상사(商社)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장그래의 수난기가 나온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소설 역시 지금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여 다른 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나(지수)’가, 어느 큰 수술을 받고 나서 (어떤 병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서 생활하던 중에 7년 전 자기 밑에 있었던 인턴 사원 ‘다희’를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희는 유방암 수술을 앞둔 어머니 병간호를 하던 와중에 수술 후 몸을 추스리고 있던 지수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으며, 이걸 계기로 지수는 7년 전 인턴 사원으로 있었던 시절의 다희를 회상하게 된다. 아직 차도 없고 운전을 할 줄 몰랐던 다희는 당시 지수의 차를 같이 타며 직장 선후배 이상으로 (마치 자매 사이처럼) 가까워지나 했지만, 인턴 사원의 가장 큰 고초인 직원들의 세상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에 우울해하던 다희는 우연히 지수와 다른 동료들의 대화 (요약하면, 그냥 사수/부사수일 뿐이라는 대화)를 듣고는 다희 역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그냥 사수일 뿐이라는 것을 듣고 심리적 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뒷 얘기는 더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추측해보면 그 때 다른 인턴 사원도 마찬가지고 다희 역시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실패한 거 같다.
KAIST 학부 출신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사실 나는 대기업 인턴 사원의 고충을 직접 경험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소위 수많은 ‘미생’들의 고충을 공감하기는 어렵다. 예전 SK하이닉스 인턴 시절에도, 연구실에 들어오기 직전에 삼성전기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에도 그 때의 인턴은 소위 ‘미생’의 그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인턴 프로그램은, 어떻게든 해당 인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교육만 받는 인턴 사원들에게 200만원의 월 급여를 주지도, 심지어 지낼 곳으로 근처 비즈니스 호텔방을 줄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턴 사원은, 취업난을 간신히 뚫고 미생으로라도 취업해서 어떻게든 정규직 전환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다. 그 전까지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도,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도 없으며 조직 내에서 조직에 속하지 못한 채 겉돌면서 갖은 수모와 불이익을 감당하면서 인내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퇴근 후 눈 붙이기 전 잠시 유튜브를 켜면, EBS 다큐멘터리나 다른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청년 취업난”, “쉬고 있는 청년 비율” 등이 종종 뜨고는 한다. 대기업/중견기업 들이 채용, 특히 학부 채용을 줄이고 소위 비공개 채용 (사실상 경력직 신입을 뽑겠다는 소리다.)을 늘리는 것이 트렌드가 되면서 더더욱 청년들이 설 곳이 좁아지고 있다는 내용들. 뻔한 내용이지만 뻔하게 취급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가끔 교회(가톨릭 신자지만 가끔 오랜 친구놈과 같이 성공회/장로회 교회도 출석하곤 한다.) 나 성당 건물에서 가만히 있으면서 종종 생각하는 것이, 나는 어쨌든 대학원 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말은 못해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일종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층이고 앞으로 어느 정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게 되더라도 지금도 사회에 있는 수많은 미생들과 소외된 자들을 공감해줄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가끔 하고는 한다. 이 소설에 마지막 맺음말처럼, 지금 잘 안되더라도 그들이 여전히 그들인 채로 살아갈 수 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나도 아내와 같이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면 그들이 그들인 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노력 하나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그런 작은 기도를 말이다.
“창에 달라붙은 눈은 금세 작은 물방울이 되었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눈은 지상의 사물들을 흰 빛으로 덮었다.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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