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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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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1,731회 작성일 24-10-1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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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트 러셀-

 


 대한민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첫 주말. 

 어느때보다 북적이던 서점에서, 모두함께 독서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쌓겠다는 의지가 가장 만연한 이 때. 나도 분위기에 편승해 그동안 멀리했던, 조금은 머리아픈 서적들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괜히 철학서적 쪽을 서성거려보았다.그런데 생각보다 내 의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지 눈에 들어오는 서적이 없어 애꿎은 책들만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와중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책 제목을 발견하였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월 초에 올리는 독후감을 이 때까지 미룬 게으름뱅이의 눈길을 끌기에 이보다 적절한 제목의 책이 있을까...?

 철학 책 한 번 읽어보겠다고 호기롭게 책장 앞에 서서는 결국 집어들었다는 것이 그동안의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를 하려고 읽는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며 생긴 약간의 반성과 자괴감으로 다른 책을 다시 고를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누가 이렇게 불순한 글을 썼는 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구매해서 집​에 왔다.


 고민과 무색하게 책의 내용은 러셀이 현대사회(이 때의 현대는 19세기 초반이다) 문제를 탐색하며 고찰한 내용이었다.

18세기말~19세기 초 급격히 이루어진 산업화로 인해 사회는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익을 낳는 것만이 바람직한 행위라는 시각이 만연해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여 사람들의 삶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높아진 효율성과 생산성에 의해 일하는 사람들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끊임없이 일만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아진 자리에서 쫒겨난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무모한 게으름만 강요되는 사회가 이루어져 있었다.

발전하는 사회에서 도구로 전락해버린 사람들과 그런 삶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러셀이 말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종종 내가 부리는 나태함을 권장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인간 다운 삶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 ‘무용함을 향유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초에 다룬 고찰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책에 나오는 많은 내용들은 여전히 지금의 현대사회와 닮은 점이 많았다.

 


우리시대 청년들의 냉소주의

 러셀은 다른 지역보다 산업화가 더 잘 이루어진 미국과 독일 등 잘 사는 몇 개의 나라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지식층 청년들이 냉소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반례로 동양의 젊은이들이 왜 냉소적이지 않은가 고찰하며 원인을 분석한 내용이 있다. (지금은 동양이 더 냉소적인 것 같다)


 러셀의 시대에 동방의 국가들은 국가적으로 혹은 국가 내에 열정을 쏟을 대상이 있었다. 그 열정이 애국주의와 같이 자신의 국가를 억압하던 타국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뭉친 열정이기도, 자유를 바라며 전통적 봉군주의에 대한 투쟁을 벌이기도 하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이상을 쫓아 열정을 부르짖었다.

반면, 서양의 지식인 계층 청년들에게는 이러한 방식으로 청년들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오히려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애국심이 억압이 되기에 국가와 전통 모든 것을 비판하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러셀은 이런 청년들의 회의적인 태도에 대해 국가의 발전한 교육수준에 의한 지적 원인보다는 사회적인 원인을 꼽는다. 교육의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과거의 사람들보다 상당한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발휘할 기회가 없어진 청년들이 냉소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더 잘 살아 내기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여도 끊임없이 올라가는 사회의 기준과 더 나은 삶을 향한 장벽에 의해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음이 청년들을 회의적이게 한다. 이들에게 이상을 설교하고 제시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문제의 근본에 대한 해결점은 누구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의 냉소주의는 치유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100년이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될 거라고들 말한다. 국가 소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출산율과 높은 청년실업률, 그에 대비되는 인력난, 세대와 성별, 직업, 종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타나는 여러 사회적 갈등들, 높아지는 필수 생활에 필요한 물가들을 보면 맞는 말 같다. 모두가 인정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등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러셀은 이러한 사회적인 관점에서 청년들에게 그리고 현대사회의 사람들에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없이 지나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무용한 시간을 즐겨보라는 의미의 게으름이다. 쳇 바퀴에 지쳐 쓰러지지 말고, 내려와 숨을 고르며 쉬다가 천천히 걷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는 것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 부러지지 말고 무용한 지식을 쌓아보기도, 무용한 생각을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삶의 균형과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 그 것이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다.   

한 달에 한 번, 연구실에서 벗어나 서점에서 서성이고, 책을 읽고 사색에 빠져보는 바로 이런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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