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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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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2,120회 작성일 24-08-1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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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지음-


“모든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


이 책은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중년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간병하는 20대 청년 준성, 2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명주는 1년 반 전 치매가 심해진 어머니와 살기 위해 엄마의 임대 아파트로 들어왔다. 월 100만원 남짓한 어머니의 연금에 의지해 어머니를 간병하며 살아가던 명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삶도 끝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명주는 마음을 바꿔 엄마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고 당분간 엄마의 연금으로 살기로 한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연금이 입금됐다는 알림 문자였어.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치더라고.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들어오는 연금이라니. 웃기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 다시 살고 싶더라. 나는 한 번도 날 위해 이만한 돈을 써본 적이 없었어."


위 문장에서 돌봄과 간병이라는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해지고 비굴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사랑, 가족, 정의와 같은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가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챙길 수밖에 없는 야만의 상황에 가족과 윤리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과 절망이 주인공들을 극한으로 내모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딜레마는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게 한다.


나이 든 부모님이 있는 사람, 그 부모님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사람, 누구보다 가족을 소중히 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꿈꾸는 사람일수록 글 속 주인공의 참담한 현실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하나엔 포함될 것이기에 이 책을 읽을 때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듯하다. 보통 우리는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가족의 힘을 빌려 극복한다. 아빠에게 전화해 용돈을 받거나 엄마에게 위로를 받으며, 혹은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으로 인해 받는 고통은 과연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간병과 돌봄의 무거움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의지할 곳 없는 고통을 담담하게 비춰주는 이 책은 어떤 소설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총총히 돌아가는 그들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생각했는데 불쑥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토록 지긋지긋해 마지않던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오랜 기간 간병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시며 느껴졌던 잠깐의 해방감은 그새 가족의 떠났다는 공허함으로 전환된다. 간병인은 어떤 선택을 해도, 어떤 노력을 해도 필연적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단지 삶을 연명하기 위한 치료를 멈출 수 있는 의료적 제도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듯한 간병을 마무리할 수 있겠지만,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오롯이 간병인의 몫이다. 주인공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두고 연금을 빼먹고 죽은 엄마가 흙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게 만든 패륜아였다. 하지만 그 패륜아가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감정이 나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간병인이 처한 모순적이며 필연적인 고통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청년 간병인의 적나라한 고통을 보여준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에서 이웃의 이야기, 내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더 슬프다. 매일 무심코 지나가는 사회부문 기사 헤드라인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알게 된 것 같다. 이른바 '간병 살인', 가족이 살인적인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간병 중 간호가 너무 힘들어 결국 살인을 하거나 살인에 방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과거야 부모님의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끝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게 효(孝)였지만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유병 장수의 시대가 된 요즘은 그렇지 않다. 간병 살인으로 가족을 죽인다는 행위에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고 싶다. 간병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간병인이 마주한 모순적이고 필연적인 고통에 공감해 보자. 그것이 우리가 간병인에게 전할 수 있는 심심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잔혹한 현실이 들이닥쳤을 때, 끈임없는 이성과 본능의 줄다리기 속 어느 곳으로 무너져 내릴 것인가.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하고 혹독한 겨울 이야기. 우린 자극적인 기사제목으로 패륜아로 묘사되는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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