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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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전쟁, 10년의 귀향 —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고
(원작 : 호메로스 오디세이)
여름 휴가라고 거창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극장 에어컨이나 쐬자는 심산이 반, 요즘 통 같이 뭘 하려 들지 않는 중학생 아들을 밖으로 끌어낼 핑계가 반. 그렇게 고른 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였다. 러닝타임이 길다길래 저 녀석이 중간에 졸면 어쩌나 싶었는데, 웬걸, 극장을 나오면서 제일 말이 많았던 게 아들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트로이에서 10년을 싸운 오디세우스가, 다시 10년에 걸쳐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그런데 그 '돌아가는' 시간이 이렇게 길고 험할 수 있나 싶게, 바다는 매번 그를 엉뚱한 섬으로 떠밀어 놓는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한 고비, 겨우 살아남으면 또 다른 재앙. 보다 보면 이 사람은 대체 언제 집에 가나 싶어 답답하다가도, 그 답답함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진짜 힘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섬에서 섬으로 건너가며 매번 새로운 사건이 완결되는 구조가, 나는 자꾸 만화 원피스 초반부를 떠올리게 했다. 목적지는 저 멀리 분명한데, 그 사이사이의 섬마다 한 편씩 완결된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가는 방식 말이다. 외눈박이 거인이 사는 섬에 갇혔다가 잔꾀를 부려 빠져나오는 대목에서는, 아 원피스도 결국 이 오래된 이야기에 크게 빚지고 있는 거구나 싶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수천 년 전 이야기의 골격이 지금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옆에 앉은 아들에게 "저거 원피스 같지 않냐" 했더니, 평소 같으면 아빠 취급도 안 할 녀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좀 뿌듯하기도 했다.
사람을 돼지로 만들어 버리는 마녀 이야기가 나올 때는 아내가 먼저 내 팔꿈치를 쿡 찔렀다. "저거 센과 치히로 아니야?" 미야자키가 여기서 한 자락 가져왔겠거니 하는 생각은 나도 마침 하던 참이었다.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순간 사람이 짐승으로 변해 버린다는 그 오싹한 상상이, 알고 보면 이렇게 뿌리 깊은 것이었다니. 우리가 좋아하던 만화와 애니가 사실은 다들 이 한 권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였구나 하는 생각에,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큰 나무의 밑동을 더듬는 기분이 들었다.
놀란 영화가 늘 그렇듯 화면과 소리는 두말할 것이 없었다. 바다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의 그 압도적인 크기, 배가 파도에 곤두박질칠 때 극장 의자 밑바닥까지 울려 오던 저음. 신화와 판타지라는 게 자칫 유치해지기 쉬운 소재인데도, 이걸 마치 실제로 겪는 일처럼 만들어 놓으니 딴 세상 이야기가 순식간에 살갗에 와닿았다. 판타지와 스토리텔링, 연출과 사운드 어느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서, 평점 만점으로도 부족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걸 큰 화면 큰 소리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휴가 값은 다 했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극장을 나와 후덥지근한 밤바람을 맞으며 오래 남은 건, 화려한 장면들이 아니라 '집'이라는 한 글자였다. 10년을 싸우고 다시 10년을 헤맸는데, 그 사람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곳이 결국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집 한 채였다니. 젊을 때 봤으면 그저 모험담으로만 읽고 넘겼을 텐데, 마흔을 훌쩍 넘겨서 보니 이 이야기의 심장은 괴물도 마법도 아니고 그 지독한 그리움이라는 게 보였다. 옆에서 팝콘 부스러기를 흘리는 아들과, 조금 전까지 "저거 센과 치히로"라며 들뜨던 아내를 흘끔 보다가, 나는 이미 그 집에 도착해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 괜히 멋쩍고 또 고마웠다.
사실 ‘오디세이’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책도 몇 번 펴 보긴 했다. 그런데 워낙 분량이 상당하다 보니 늘 앞부분만 읽다가 슬그머니 덮어 두기를 반복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숙제처럼 책장 한 켠에 꽂아만 두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영화가 앞부분만 알던 이야기의 뒷장을 확 열어젖혀 놓으니, 미뤄 두었던 그 나머지와 영화와 다른 부분들이 갑자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 집이 어떤 얼굴로 그를 맞았는지, 이번엔 내 눈으로 끝까지 확인해 봐야겠다. 이제는 정말 책을 다시 펼쳐 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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