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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낭시에와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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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272회 작성일 26-08-16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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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 를 읽고


진실한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사랑을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배우자가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를 기꺼이 배워야만 한다.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고유한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이 다섯 가지 언어 중 사람마다 특별히 더 크게 반응하는 언어가 있으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내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데, 상대는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어서 오해와 서운함이 쌓인다고 설명한다. 결국 사랑은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상대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비로소 전달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다섯 가지 언어 중에서도 나는 특히 "선물"이라는 언어에 눈이 갔다. 책은 선물이 물건의 가격이나 실용성만으로 설명될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생각했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선물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직관적인 언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은 동시에 중요한 함정을 짚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과,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도, 그것이 상대의 취향과 어긋나 있다면 그 사랑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진짜 사랑의 언어는 내 기준이 아니라, 철저히 상대방의 기준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얼마 전 들은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매번 휘낭시에를 선물했다고 한다. 아마 남자친구 나름대로는 정성껏 고른 선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사실 휘낭시에보다 바게트를 더 좋아했고, 그 사실을 마지못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남자친구는 계속 휘낭시에를 선물했다. 책의 논지에 대입해보면, 이 상황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번역이 되지 않은 경우에 가깝다. 남자친구는 "선물"이라는 언어 자체는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었지만, 그 선물의 내용을 자신의 기준으로만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자신이 무엇을 주고 싶은지가 앞섰던 셈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남자친구가 바게트를 선물했을 때, 친구는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같은 "선물"이라는 언어였지만, 이번에는 내용이 상대의 언어로 정확히 번역되어 있었다.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결국 사랑이 전달되느냐 마느냐를 가른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책이 말하는 핵심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의 크기나 정성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상대방이 실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달되었는가이다.


이 개념은 비단 연인 사이의 선물에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종종 내가 해주고 싶은 방식으로 배려를 표현하고, 그것이 상대에게 온전히 닿지 않아 서운함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결국 상대의 언어를 알기 위해서는 짐작이나 습관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때로는 직접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친구의 남자친구가 계속 휘낭시에를 선물했던 것처럼, 우리도 종종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복해서 건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진짜 배려란,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휘낭시에에서 바게트로 옮겨간 것처럼, 사랑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언어를 배우고, 나의 표현을 그 언어로 번역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번역이 정확할 때, 사랑은 비로소 상대의 마음에 온전히 도착한다.


너에게 휘낭시에는 무엇이었을 것이고, 바게트는 무엇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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