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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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
삶의 진리와 지혜는 과연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싯다르타』는 한 인간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브라만 계급의 청년 싯다르타는 반복되는 기도와 가르침만으로는 자신이 찾는 아트만, 즉 본질적인 자아와 삶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고 집을 떠난다. 이후 사문으로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를 만나며, 돈과 사랑, 쾌락에 빠진 세속적인 삶까지 경험한다. 그리고 수많은 방황 끝에 강가에 머물며 자신만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삶을 차례로 살아가며 성장하는 싯다르타를 보며 나는 이 작품이 결국 삶이란 누군가에게 주어진 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직접 살아가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지혜는 가르칠 수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배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먼저 경험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 누군가 이미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아낸 것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경험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싯다르타』에서 이야기하는 지혜는 조금 다르다.
싯다르타는 오랜 수행 끝에도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는 고타마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아무리 정확하게 설명하더라도, 그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는 같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 다시 자신의 길을 떠난다.
그는 사문으로 살아본 뒤에야 수행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직접 돈과 욕망에 빠져본 뒤에야 그것들이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군가 처음부터 그에게 욕망이 공허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욕망 속에서 살아본 뒤 그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지식과 지혜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느꼈다. 지식은 전달받을 수 있지만, 삶에 대한 지혜는 결국 자신이 직접 살아내며 체득해야 한다.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이 방향을 알려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경험까지 그대로 넘겨받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싯다르타의 방황 역시 깨달음에 도달하기 전에 거친 불필요한 우회로가 아니라, 그가 자신만의 지혜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싯다르타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내가 겪는 경험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가능한 실패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싶어 하고, 이미 그 길을 걸어본 사람에게 정답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경험은 내 삶의 참고가 될 수 있을 뿐 내 삶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또 지금은 잘못된 선택이나 의미 없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경험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남을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싯다르타가 사문의 삶과 세속의 삶을 모두 지나왔기에 자신만의 삶의 진리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옳은 길만을 고르는 것보다 내가 선택한 길을 직접 걸어보고 그 안에서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은 삶의 전부를 담지 못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오랫동안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음에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오랜 친구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그가 깨달은 지혜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지혜를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그가 살아내고 깨달은 전체가 아니라 그중 일부만을 담은 설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근무시간이나 업무 환경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 “부서 바이 부서”, “사람 바이 사람”는 말을 사용한다. 같은 회사, 같은 직업 안에서도 상황과 부서, 사람에 따라 실상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사실조차 몇 마디 말로 모든 경우를 설명하기 어렵다면, 한 사람의 삶이나 삶의 진리를 말로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또 우리는 어떤 지식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기도 한다. 비유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을 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대상에 빗대어 보여줌으로써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동시에 비유된 대상과 설명하려는 개념을 지나치게 동일시하게 만들면서 다른 측면을 가릴 수도 있다. 아무리 적절한 비유라도 결국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일 뿐, 그 대상 전체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 설명하는 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두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다”, “성공한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고, 그 표현 자체는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어떤 순간에는 이기적이면서 또 다른 순간에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하나의 표현이 그 사람의 특정한 모습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한마디를 듣고 “원래 저런 사람이었구나” 라고 쉽게 판단할 때가 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내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싯다르타』를 읽으며 나는 말은 어떤 대상의 전체라기보다 그중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말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국 말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한다. 다만 내가 들은 한마디를 그 사람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고, 내가 하는 말 역시 내가 바라본 세계의 한 부분일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찾아 이야기하는 편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은 다르다. 상대는 자신의 말에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지 못했던 다른 시각을 듣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어느 정도의 마찰은 생기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마찰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한마디를 그 사람의 전부로 단정하거나 서로의 차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좋은 대화란 언제나 의견이 일치하는 대화라기보다, 서로를 하나의 말이나 하나의 생각으로 단순화하지 않은 채 그 차이를 이해해가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안의 강
『싯다르타』에서 강은 삶의 단일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존재이다. 상류와 중류, 하류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강으로 이어져 있듯이, 브라만의 아들이었던 싯다르타와 사문이었던 싯다르타, 세속에 빠졌던 싯다르타와 마지막의 싯다르타 역시 모두 하나의 삶을 이룬다. 즉 서로 달라 보이는 순간들도 결국 하나의 삶 속에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작품 속의 강을 더욱 인상 깊게 느낀 이유는 싯다르타가 강의 소리를 들으며 많은 것을 깨닫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강가로 돌아온 싯다르타는 사공 바수데바와 함께 살아가는데, 바수데바는 삶의 답을 직접 가르쳐주기 보다는 싯다르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강의 소리를 듣게 해준다. 싯다르타가 그렇게 강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삶을 이해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작품 속의 강은 우리 안에서 계속 흐르고 있는 마음과도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앞둘수록 주변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다른 사람은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어떤 선택이 더 안정적인지, 무엇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이나 압박 때문에 자신의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싯다르타 역시 오랫동안 삶의 답을 찾아 바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여정의 마지막에서 중요한 행동은 또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강가에 머물러 그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일수록 바깥의 수많은 목소리만을 쫓기보다 잠시 멈추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조언은 분명 필요하지만, 결국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선택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나에게 삶의 정답보다는 그 답을 찾아가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되 그것을 유일한 답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겪게 될 경험에도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며, 다른 사람을 한마디의 말로 쉽게 단정하지 않고 싶다. 그리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바깥의 소리뿐 아니라 내 안에서 흐르고 있는 강의 소리에도 경청하며, 그렇게 나만의 아트만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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