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구트 꿈 백화점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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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0
- 이미예 -
예전에 『달러구트 꿈 백화점』1권과 2권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꿈을 사고판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안에서 각자의 상처와 소망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꽤 인상적으로 남아 있던 책이었다. 그보다 앞선 이야기를 다룬 『달러구트 꿈 백화점 0』이 새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달러구트의 과거를 만난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달러구트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다.
책은 ‘양을 세며 잠든다’는 너무나 익숙한 소재에서 시작된다. 어렸을 적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엄마는 양을 100마리까지 세면 잠이 올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나는 늘 100마리를 다 세기 전에 잠들었던 것 같다. 사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법한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양을 세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양들 사이에 ‘양치기 소년’이 등장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그 양들을 관리하는 양치기 소년이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너무 익숙한 ‘양 세기’와 ‘양치기 소년’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했다는 점이 예상 밖이라 재미있었다.
0권의 달러구트는 꿈 백화점의 노련한 주인이 아니라 열아홉 살의 소년이다. 당시에는 아직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이름조차 없었고,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는 ‘세 번째 제자의 유서 깊은 가게’라고 불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달러구트는 어머니를 도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마저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사라지기 전 가게를 담보로 큰돈을 빌렸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 달러구트는 어린 나이에 혼자 가게와 빚을 떠안게 된다.
달러구트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꿈을 사고파는 마을에 살면서 정작 자신은 심각한 불면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사라진 뒤에는 밤낮없이 어머니를 찾아다니면서 상태가 더욱 심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면증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다르게 꿈과 잠이 삶의 중심인 세계에서는 불면이 아주 큰 결함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던 중 달러구트에게 누구든 깊이 잠들게 해준다는 ‘양 세는 꿈’이 들어오게 된다. 그 꿈속에는 수많은 양과 함께 자신을 늑대라고 말하는 검은 양과 양치기 소년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기묘하고 불쾌한 꿈이라고 여기지만, 평생 제대로 잠들어본 적 없던 달러구트는 그 꿈을 통해 처음으로 몇 시간 동안 깊이 잠든다. 아무리 이상하고 위험한 꿈이라도 다시 한번 푹 잘 수 있다면 꾸고 싶다는 달러구트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잠을 잘 자는 사람에게 네 시간의 수면은 별것 아닐 수 있지만, 한 번도 편하게 잠들어보지 못한 달러구트에게는 그 시간이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 세는 꿈’은 단순히 달러구트의 불면증을 해결해주는 꿈으로 끝나지 않는다. 달러구트는 사라진 어머니의 행방을 찾아 계단상회와 만년설산 등 여러 장소를 오가고, 그 과정에서 이전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던 인물들을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산타클로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수상한 꿈의 레시피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꾸었던 위험한 꿈과 어머니의 실종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결국 달러구트가 처음에는 자신의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았던 ‘양 세는 꿈’이 어머니가 사라진 이유를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처음에는 양 세기와 양치기 소년의 조합이 그저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것이 달러구트의 불면증과 어머니의 실종을 모두 이어주는 핵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러구트는 결국 꿈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어머니가 그곳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머니와 그곳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낸다. 그렇게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달러구트는 단순히 가게를 물려받은 소년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조금씩 찾아간다. 이후 ‘세 번째 제자의 유서 깊은 가게’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이어지게 된다.
성인이 된 후의 달러구트는 어떤 문제가 생겨도 여유롭게 상황을 바라보고 손님에게 알맞은 꿈을 권해주는, 이미 완성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 책의 달러구트는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가게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며 자신의 불면증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 와중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겪으며 조금씩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간다.
이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내 모습도 조금 겹쳐 보였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잘했을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반대로 내가 아직 부족한 부분을 마주하면 생각보다 쉽게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서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달러구트 역시 당시에는 어머니를 찾는 일도, 가게를 지키는 일도, 자신의 불면증을 해결하는 일도 제대로 답을 알지 못한 채 부딪혀가며 해결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1, 2권에서 보았던 달러구트의 여유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완성된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결과만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나는 어떤 꿈을 사고 싶을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완성된 꿈 백화점의 모습보다 그곳이 만들어지기 전의 시간을 보고 나니, 지금 당장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경험들도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겪고 있는 과정이 정말 어딘가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익힌 것과 견뎌낸 경험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를 지탱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달러구트 역시 열아홉 살의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훗날 꿈 백화점을 운영하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실패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은 배우며 앞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나 역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의 의미를 당장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경험은 앞으로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 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반복해서 부딪히고 고민하는 과정까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지금보다 조금 더 익숙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을 때, 그 모습 역시 어느 순간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서툴고 답답했던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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