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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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한 인간이 태어나 긴 세월을 거치며 저마다 고유한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가게 되는 근원적인 동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갓 태어난 생명은 누군가의 절대적인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기 전혀 다른 무늬의 인생을 완성해 나간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핏줄의 묘한 닮음을 마주할 때면, 필연적으로 우리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어떤 기원의 존재를 떠올리곤 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탁월한 통찰은 바로 이러한 생명의 근원과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태에 대해 생물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던져주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의 사고 체계에 신선하고도 묵직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가 제시한 패러다임은 지난 수십 년간 생명체의 복잡한 행동 양식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독보적인 틀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생명의 본질을 태초부터 생겨나 스스로를 복제하며 살아남은, 지독한 생존 본능을 지닌 미세한 인자에서 찾는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매 순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듯하지만, 거시적인 자연선택의 무대에서는 그저 이 영속적인 인자들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맹목적인 생물학적 운반체에 불과하다. 인간의 삶이 철저히 생물학적 목적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다는 이 서늘한 통찰은 마치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듯한 씁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치밀한 논리는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나아가 이 이론은 생명체의 고결해 보이는 이타적 행위마저도 철저한 이익의 계산으로 치환해 버린다. 자식을 향한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나 자기희생조차도 결국은 자신과 동일한 생명 정보를 세상에 더 많이 남기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갓 태어난 새끼가 가차 없이 생태계의 가혹한 먹이사슬 속에서 희생되는 환경조차도, 종 전체의 유지라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냉혹한 계산의 결과일 뿐이다.
생명의 유지와 번성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근원적 본성이 결국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오랜 철학의 명제처럼, 우리 역시 태생적인 본성에 이끌려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거대한 자연의 생태계를 바라보면, 과연 이 세상을 이기심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온전히 정의할 수 있을지 짙은 의문이 든다. 수많은 생명체가 얽혀 있는 자연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한 환경이 되어주며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치열한 생존 투쟁의 이면에는 이기심을 넘어 결국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협력의 메커니즘이 더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인간의 삶을 생물학적 결정론의 굴레 안에만 가두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주어진 본성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사유하고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혁신해 온 유일한 존재다. 장구한 세월 동안 눈부신 문명을 이룩하고 진화를 거듭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명령에 복종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의지가 빚어낸 결실이다. 이따금 타인의 눈부신 성취를 마주할 때, 그것을 단순히 타고난 탁월한 재능의 결과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내재된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숭고한 힘이 있다. 그 내면의 가능성을 온전히 믿고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진정으로 의미 있는 변화와 도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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