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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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읽고-
윌리엄 골딩의 소설『파리대왕』은 1954 년에 쓰여진 소설로,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해 고찰한 바를 풀어낸 소설로 읽힌다. 전쟁 중 아이들을 태우고 피난하던 비행기가 격추되서, 무인도에 6살쯤부터 12살까지의 소년들만 살아남아 어른은 한명도 없는 상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엔 민주주의와 질서를 상징하는 소라 껍데기를 규칙 삼아 질서를 세우지만, 등장인물들 중 사냥을 맡은 잭이 폭력과 지배욕에 사로잡히면서 공동체는 야만으로 미끄러진다. 그 와중에 처음 소라 껍데기를 불어 아이들을 모았던 랄프를 돕던, 이성을 상징하던 피기는 살해되고 결국 소라는 부서진다. 마지막엔 잭 무리가 랄프까지 사냥하려고 섬 전체에 불을 질러 그를 몰아붙이고, 랄프는 죽기 직전 해변으로 도망치는데 불로 인한 연기를 보고 지나가던 해군 장교가 상륙해 아이들을 구조한다. 어른이 나타나자 살기등등하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그냥 우는 어린애들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문명이라는 것이 없을때 인간 안에 숨어 있던 야만이 드러난다는 것, 그것이 해당 소설을 통해 골딩이 말하려던 바다.
골딩이 왜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2차 대전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고 전후에 나치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접했다. 교육받은 문명인들이 관료제를 통해 조직적으로 학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낙관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비관은 형이상학적 결론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충격의 산물에 가깝다. 그러나, 골딩이 결론내린 파리대왕 속 소년들의 모습을 인간 본성에 대한 보편적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골딩은 파리대왕을 통해 인간들을 마치 문명과 규칙이 사라지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야만인들로 묘사해 놨지만, 실제로 대규모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보면 오히려 그것은 반대일 수 있다. 20세기의 학살들은 대부분 소위 높으신 분들이라 불리는 사회의 지배계층에서 조직되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조직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지시한 결과였고, 르완다 학살 또한 지배계급이 상황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몇 달에 걸쳐 증오를 확산시킨 결과였다. 그들을 그냥 놔두었으면 과연 자발적으로 그런 학살을 저질렀을 것인가? 사람은 좀처럼 타인을 죽이려 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군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병사가 적군을 죽일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가미카제나 자살 폭탄처럼 극단적인 자기희생은 예외 없이 강력한 이데올로기 장치와 세뇌, 고립을 전제로 한다. 순수한 개인이 홀로 그 지점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역사에 남을 만큼의 대규모 폭력의 책임을 인간의 악한 본성에서 찾는 것은 너무 단순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일부러 광기와 혐오를 주입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해야만 할 것은 결국 폭력의 조직화 자체가 위의 탓이라 할 지라도 결국 그것을 발현시키는 근원이 사람들 안에 이미 존재하긴 한다는 것이다. 선동이 먹히려면 사람들 속에 그 선동이 먹힐만한 재료가 이미 있어야 하고, 심지어 그 사상을 주입하는 사람들 역시 결국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사회에서는 언제나 파리대왕의 잭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문명과 규칙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폭력에 물들지 않을지는 확신할 수 없긴 하다.
결국 인간이 문명과 규칙이 사라진 곳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는 그들이 악한가 선한가를 떠나서, 잭이 나머지를 휩쓸 수 있는가, 아니면 나머지가 잭을 억제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폭력이 터지느냐 마느냐는 사람들의 본성 그 자체가 악하냐 아니냐 보다는 이 힘겨루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명과 규칙이 없는 곳에서도 이러한 힘겨루기는 보통 잭이 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소규모 수렵채집 사회는 강한 평등주의를 유지했는데, 지배하려 드는 자가 나타나면 나머지가 조롱과 따돌림으로 눌러버리는 규범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잭과 같은 자가 있었지만 그를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야만의 시대라 불리는 고대 인간들 또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파리대왕에 나오는 골딩이 선택한 등장인물들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표본이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1950년대의 영국 소년들, 거기다 상당수가 사립 기숙학교 출신이었다. 당시 영국 기숙학교는 체벌과 선후배 위계에 의한 괴롭힘, 폭력적 서열문화가 제도화된 곳이었다. 결국, 소설에 등장한 소년들 자체가 무작위 인간들이 아닌 이미 지배와 복종의 문법을 훈련받은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골딩은 문명을 벗기면 야만이 나온다고 주장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폭력 문화가 이미 새겨진 아이들을 소설에 등장시켜 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이었다. 과연, 보통의 소년들이 잭의 지시를 따라 규범을 파괴하고 친구들을 살인하고 복종시키는데 가담하였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실제 사례가 있다. 1965년 통가의 소년 여섯 명이 배를 타고 나갔다가 아타라는 무인도에 조난당해 15개월을 보냈다.『파리대왕』의 실사판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불을 피우고, 농사, 요리, 경비 등의 임무를 나누어 맡았다. 다투는 일도 있었지만, 갈등을 잘 관리하였고 노래로 시작해서 기도로 하루를 끝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지만, 다른 소년들은 부상당한 소년을 치료하고 잘 보살펴 주었다. 『파리대왕』에서 벌어진 일은,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사건에 나온 아이들 또한 편향된 표본의 아이들이긴 하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였고, 협력적인 공동체 문화에서 자랐으며, 잭 같은 지배형 인물이 없었다. 이는 결국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골딩의 주장은 너무 극단적인 것이며, 사람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윌리엄 골딩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극단적이라는 증거는, 문명의 존재 그 자체에서 나온다. 만약 인간 대다수가 잭과 같이 폭력적이고, 지배적이라면 협력이 예외이고 인간간의 배신이 기본일 것이다. 인간이 그랬다면, 과거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을 시절 도시를 세우고 낯선 사람과 거래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축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매일 많은 사람이 서로 해치지 않고, 약속을 지키고, 처음 보는 사람 또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먹은 음식에 누구도 독을 타지 않았으리라는 이 암묵적 믿음이야말로, 대다수의 인간들은 악하기 보다는, 중립과 선의 그 어딘가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고도 다양하나,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로우며 척박하고도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 시몬 베유 -
우리는 항상 뉴스와 소문을 통해 사람들의 흉흉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것은 폭력과 배신이 눈에 띄기에 주로 다뤄지는 것일 뿐이며, 협력은 너무 흔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말 그대로, 우리 모두가 일상에 자리잡은 신뢰와 협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다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일어나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일로 취급되는 폭력과 배신이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익숙하여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간의 협력과 신뢰가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사람들은 인간의 악함에 냉소적으로 반응하고, 인간은 역시 악하다며 절망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인간이 선하기를 원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자조적인 하소연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왜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사람들을 성인이라 칭하며, 그들을 존경하고 위인으로 삼았겠는가. 신체적으로 약한 종임에도 지구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인간들의 무기중 하나가 대규모 협력이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도덕적 장식이 아니라 우리 인간 종의 생존 전략으로 선택되었음을 말해준다.
파리대왕속 소년들이 증명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야만적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 문화를 학습한 인간을 압력 상황에 놓았을때 선동에 의해 폭력이 재현될 수 있다는 훨씬 좁은 명제이며, 우리가 사회에서 주의해야할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골딩의 비관은 인간 본성의 바닥이 아니라, 잭을 억제할 규범이 무너졌을 때 드러나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절망한 그의 충격을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완전히 이해하는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충격이 고른 시나리오를 인간의 진실로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잭은 실재하지만, 인간 대다수는 중립과 선 사이의 어딘가에 있으며, 문명이란 후자가 전자를 억제해온 오랜 역사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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