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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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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호석
댓글 0건 조회 186회 작성일 26-08-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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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밀란 쿤데라의「농담」를 읽고-

 

 

 

 

지금 뉴스에는 농담거리로 삼을 만한 일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인가.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고 현실이 오히려 풍자를 앞질러 버린 지금, 어지간한 일을 농담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무미(無味)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농담거리를 찾는다.

뉴스와 권력자를 풍자하고, 금기시되는 주제를 건드리며, 때로는 서로를 웃음거리로 삼는다.


말하는 것에는 언제나 더 영리하고, 더 섬세하며, 덜 저급한 방식이 존재하기에,

모든 대상은 농담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농담으로 삼았는지만으로 농담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소재만큼 중요한 것은 그 농담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이다.


농담이 제대로 전달되는 순간, 우리는 웃는다.

우리가 농담을 듣고 웃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우스워서만은 아니다.

화자가 내뱉은 무언가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보기 때문에 웃는다.

사적이었던 생각과 경험은 웃음을 통해 공동의 것이 되고, 다른 이들 역시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농담은 이처럼 사람들을 같은 파장 위에 올려놓는다.

설명을 주고받거나 합의를 거치는 것보다 즉각적이며, 논리보다 정서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데 무척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농담은 사람들을 연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담의 파장이 어긋났을 때, 그 여파로 인한 교란을 보여준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작품 中-

 

루드비크가 엽서에 적어 보낸 몇 줄의 문장은 그에게 가벼운 장난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와 권력의 손에 들어간다.

루드비크에게는 장난이었지만, 체제에는 불온한 발언이었다.

결국 웃음이 차지했어야 할 자리에는 문자만 남고,

그 문자는 루드비크의 삶을 무너뜨리게 된다.

 

작품이 보여 주는 것은 한 번의 농담이 불러온 비극만이 아니다.

농담으로 삶을 빼앗긴 루드비크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사람에게 복수하려 한다.

과거를 바로잡고, 뒤늦게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복수 역시 의도한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루드비크가 부여한 의미와 상대가 받아들인 의미는 다시 한번 어긋난다.

그가 비극이라 여긴 일은 누군가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고,

복수라고 믿었던 행동은 엉뚱한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다.

과거의 농담에 사로잡혀 살아온 루드비크 자신마저 또 다른 농담 속에 놓이고 만다.

 

삶은 좀처럼 한 사람의 의도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우리가 던진 말은 타인의 마음속에서 다른 의미가 되고,

우리가 복수라 부른 행동은 상대에게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하며,

우리가 비극이라 믿어 온 기억은 시간 속에서 빛이 바래기도 한다.

어쩌면 작품에서 가장 잔인한 농담은 엽서에 적힌 몇 줄의 문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지만,

세상은 그 의미를 보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지나간 삶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또 다른 어긋남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

 

농담의 가벼움은 말 자체에 있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의 농담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함께 웃는 일이 아니다.

그 말이 놓인 맥락을 살피고,

말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며,

서로의 파장이 맞춰지는 일이다.

웃음은 가볍지만,

그 웃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때로는 가볍지 않은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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