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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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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216회 작성일 26-08-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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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크리스틴 로젠 -

 

 

 

‘촬영은 커튼콜 때만 가능합니다.’

 

공연을 보러 다니다 보면, 익숙하게 듣게 되는 안내문구이다. 예전에는 발레나 뮤지컬과 같이 조용히 관람하는 공연에서 주로 들을 수 되었다면, 요즘은 관객의 떼창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언젠가 순간을 기록하고, 공연이 끝나면 SNS에 추억을 공유해달라고 하는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공연을 즐기는 방식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고, 관객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나누는 것까지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과거에는 카메라만 들어도 시큐리티에게 제지되며 퇴장당한다는 말이 있었던 가수의 콘서트였기에, 새로 변화된 안내를 보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감상은 ‘차라리 예전처럼 촬영금지를 하지…’ 라는 아쉬움이었다. 과거의 공연은 앉아있던 관객들에게 모두 일어나 뛰라고 하고, 노래를 따라부르게 하며 모두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핸드폰을 든채 녹화를 하며 화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촬영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의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환호하며 신나야 하는 구간에서도 호응을 하며 무대를 바라보기 보단 손에 든 작은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기괴하게 느껴지며 공연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물론 좋아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공연이 끝난 뒤 다시 꺼내보는 것 역시 공연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기록과 공유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을 내 핸드폰에 남길 수 있다는 유혹을 누가 참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날만큼은 공연을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기록이 오히려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의 멸종』을 읽으며, 이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크게 넓혀주었다. 직접 그곳에 가지 않아도 다른 나라의 풍경을 볼 수 있고,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누군가가 촬영한 영상을 통해 무대를 볼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넘어 수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의 수가 늘어난 것과 경험 자체가 풍부해진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직접 공연장까지 찾아간 사람조차 무대를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바라본다. 여행을 가면 풍경을 바라보기 전에 사진을 찍을 자리를 찾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먹기 전에 사진부터 남긴다. 좋은 순간을 만나면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어떻게 기록할지, 무엇을 올릴지를 먼저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직접 체험하기 위해 그 장소에 갔음에도 또다시 하나의 ‘매개’를 사이에 두고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기록한 순간을 우리는 제대로 감상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게 될까? 핸드폰 속 앨범에는 수천장의 사진이 쌓여가지만, 그중 얼마나 많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는지 생각해보면 선뜻 그 기록이 의미있는 기억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나중에 보기 위해 지금의 순간을 기록하지만, 정작 그 나중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경험은 단순히 무엇을 보고 들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것을 데이터로 모사해 경험할 수 있는 시대에서, 저자는 오히려 경험의 멸종이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그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고, 주변사람들과 반응을 주고받으며 그 순간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 까지가 하나의 경험일 것이다. 화면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연성과 불편함, 타인과의 상호작용처럼 직접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잃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경험의 멸종은 우리가 더 이상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얻는 경험들이 편리한 매개를 통한 경험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매개을 통한 경험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공연을 기록하며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고, 매체를 통해 새로운 시야를 넓혀갈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의 멸종』이라는 제목처럼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얻었던 경험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기록으로 남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있는 경험도 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체감하며 즐기는 쾌락이 매개를 통해 상상하는 쾌락과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많은 왜곡된 경험을 스쳐 지나가기보다 실재하는 하나의 경험이라도 온전히 느끼고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좋아하는 가수가 곧 다시 콘서트를 연다. 작은 화면으로 바라보는 무대가 아닌, 모두 함께 현장을 즐기는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촬영이 허락된 앵콜이 시작되었을 때, 그제야 각자의 방식으로 남기고 싶은 추억을 기록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록으로 남긴 장면 만큼이나 같은 공간에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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