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비가 오는구나
페이지 정보

본문
“ 그저 비가 오는구나 ”
- 페마 초드론 著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를 읽고 -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 바라는 일이 조금씩 줄어든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거나 삶 자체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잘하고 싶은 일도 있으며, 내일이면 또 무언가에 마음을 쓰고 있을 것이다. 삶의 늘 그랬던 하루처럼. 다만 그것들이 반드시 원하는 모습으로, 하다못해 올바른 모습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믿는 마음이 조금 옅어졌다. 실망(失望)이라는 말로 더는 잃을 바램도 없다. 사람에게도, 일에도, 앞으로의 삶에도 굳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될 것은 되고, 떠날 것은 떠나고, 시간이 지나면 이 마음조차 어차피 사라질 것이기에.
어느 날 누군가에게, ‘인생이란 삶을 다할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 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꽤 허무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무언가를 이루고,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그 많은 시간을 고작 ‘때우는 일’이라는 것은 슬프고 무심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머리 속인지 마음 속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말은 오래 남았다. 꼭 거창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말이다.
부처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은 바로 그 무심함에 가까웠다.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하는 모든 것과는 언젠가 헤어지고 변하며 사라지기 마련이다. 태어나고 형성된 것은 반드시 부서지니,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람도, 관계도, 어렵게 이루어 놓은 것들도,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우리는 머리로는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가는 동안은 너무 자주 잃은 듯 잊은 채 지낸다. 그러면서 좋은 것들은 지금처럼 오래 머물기를 바라면서, 괴로운 것들은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머무르는 것과 사라지는 것. 그 둘에 우리는 끊임없이 많은 조건을 붙인다.
하지만 애초에 삶은 그렇게 견고하지 못하다. 문득 생각 하나가 생겨났다가 언제 다른 생각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삶의 순간들도 명확한 경계 없이 어지럽게 스며든다. 어제 그렇게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아무렇지 않고,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던 여느 날의 감정도 어느 날엔 원래 없던 것처럼 희미해진다. 삶도 꿈이고 죽음도 꿈이며, 깨어나는 것도 잠드는 것도 모두 똑같은 꿈이라는 말도 그렇기에 낯설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방금 전까지의 두려움이 실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듯, 지금 흐르는 삶 또한 필요한 순간마다 놓아주며 깨어날 필요가 있다.
마치 새벽녘 침대에 누워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때와 같습니다.
소풍을 기대했던 날이라면 그 빗소리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오랜 가뭄으로 정원이 시들고 있었다면 더없이 반가운 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야의 마음은 상황에 순응하는 유연한 마음이어서, 좋거나 나쁘다는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기쁘거나 슬프다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빗소리를 담담하게 인식할 뿐입니다.
- 반야(般若, 불교 용어로 ‘완전한 지혜’)를 위한 명상에 대한 저자의 말 -
비는 그저 내릴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위에 좋음과 나쁨을 덧붙인다. 어쩌면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이 뜻대로 풀리면 행운이라 부르고, 어그러지면 불행이라 부르지만 정작 그 일이 결국 어디로 이어질지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의 실패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힐 수도 있고, 훗날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나를 데려갈 수도 있다. 반대로 찬람함이 찾아온다 한들 언젠가는 놓지 못하는 집착이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너무 빨리 절망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억누르고 무심하게 살아갈까. 불교의 로종(Lojong)은 ‘분노, 원망, 두려움, 질투처럼 우리가 가장 다루기 힘들어하는 것들을 깨달음의 연료로 삼는 법’을 가르친다. 불편한 감정을 없애야 할 결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마음을 괴롭게 하는 감정들조차, 깨달음 앞에서는 그저 소멸할 무심한 것들일 뿐이다. 그러니 억누르기도 좋지만 그저 한 번 바라보고, 다 쓰고 난 뒤에는 미련 없이 흩어지도록 두는 편이 낫겠다.
삶의 덧없음은 슬프지 않다. 모든 것이 영원했다면 우리는 오히려 아무것도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사라지기에 존재함의 순간이 있고, 헤어지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있으며, 끝이 있기에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굳이 그 시간을 거창하게 채우지 않아도 괜찮겠다.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은 무상을 말하면서도 허무로 끝나지 않는다. 형성된 모든 것은 사라지니,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다하라. 어차피 사라질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사라질 것이기에 지나치게 움켜쥐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자꾸 말을 건넨다. 삶이 찬란할 때에도 영원할 것처럼 들뜨지 않고, 비참할 때에도 전부인 것처럼 무너지지 않기를. 빗소리가 들리면 다른 의미를 붙이지 말고 그저 비가 오는 줄 알고, 그날 그 비를 기꺼이 맞으며 주어진 일을 하는 삶이 되기를. 그러다 언젠가 정말 때울 시간이 모두 지나고 나면,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빗소리에도 좋다거나 나쁘다는 말, 생각, 그리고 마음 하나 붙이지 않고.
그저 비가 오는구나 하며 조용히 미소 짓기를.
- 이전글태양 아래 올리브 -김초엽 26.09.16
- 다음글경험의 멸종 26.08.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