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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올리브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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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준
댓글 0건 조회 226회 작성일 26-09-1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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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린 곳에서 서로를 향해 뻗어가는 마음

 

- 김초엽, ‘태양 아래 올리브’를 읽고

 

 

  최근 들어 집어든 책들은 이상하게 타인의 마음에 대해 묻는 소설들을 계속 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소설 역시 SF 소설이지만, 결국 철학적인 물음을 묻는 소설이었다. SF 소설은 종종 닿을 수 없는 우주의 끝이나 차가운 기술적 미래를 그리지만, 김초엽 작가의 태양 아래 올리브가 향하는 목적지는 그보다 훨씬 멀고도 깊은 곳, 바로 ‘타인의 내면’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이레’와 ‘솔민’이라는 두 인물이 ‘준’이라는 존재를 추적하며 길을 떠나는 버디 로드트립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게임과 영화 중 스토리텔링의 명작들은 항상 버디 로드트립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추적하는 것은 단순한 실종자가 아니다. 준의 발자취를 쫓을수록 이레가 잃어버렸던 과거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한 존재의 정체에 얽힌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수채화처럼 스며드는 다정한 문장을 따라 이들의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묵직한 질문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한 존재가 살아낸 시간과 기억, 감정과 고통을 온전한 하나의 삶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이 여정을 이끄는 이레와 솔민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레가 사람을 믿고 앞으로 훌쩍 나아가는 타입이라면, 솔민은 가능한 모든 위험을 의심하고 돌다리를 두드리며 길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두 가지 방식 중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방식 때문에 예기치 못한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방식 덕분에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기도 한다. 이들의 동행은 "타인과 함께 걷기 위해 반드시 같아져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레의 맹목적인 믿음이 놓치는 위험을 솔민의 이성적 의심이 막아주고, 솔민의 차가운 의심이 멈춰 서게 만드는 벽을 이레의 따뜻한 믿음이 허물어버린다. 두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비로소 서로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밝혀주며,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를 보완하는 완벽한 동반자가 된다.

 

 

  소설은 인간의 정체성을 규명함에 있어 ‘시간’과 ‘물질성’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다룬다. 작품 속에서 시간은 그저 추상적으로 흘러가는 개념이 아니다. 시간은 실제 물질에 물리적인 변화를 남기고, 그것이 뇌에 기억으로 층층이 쌓여 한 사람의 성격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형성한다. “생은 단 한 번뿐인 연산이다”라는 문장처럼, 어떤 몸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기억하며 누구를 사랑했는지,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얼마나 긴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가 모여 '지금의 존재'를 완성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사유는 ‘한국에서 자라난 올리브’라는 은유를 통해 절정에 달한다. 본래 지중해의 태양 아래 있어야 할 올리브나무가 낯선 한국 땅에 뿌리를 내렸을 때, 그 나무가 있어야 할 ‘올바른 자리’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생명체인 나무 스스로의 판단인가, 아니면 지켜보는 인간의 잣대인가. “태어나보니 그곳이었고, 이미 뿌리를 내렸으니 살아갈 뿐입니다”라는 문구가 참 좋았다. 우리는 누구도 태어날 조건과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지난 주말에 우리 부부는 아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가까운 식당을 찾았는데, 아들이 불쑥 물었다. 어디서 태어나는 것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하루 한끼도 못먹는 사람이 있는 상황도, 로마시대에 귀족들은 맛있는 것을 다시 먹기위해 토해내고 다시 맛있는 것을 찾았던 것들에 대한 차이가 왜 생기는지를 흥분하며 이야기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미 시작되어 버린 삶의 조건 속에서 잘잘못의 경계를 명확히 가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뿌리내린 곳에서 빛을 향해 가지를 뻗어 올리며 살아내는 것, 그것만이 생명이 가진 유일하고도 숭고한 숙명임을 소설은 담담히 말해준다.

 

 

  이 작품에서 ‘신앙’은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지만, 작가는 이를 좁은 의미의 종교적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김초엽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결국 ‘타인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는 문제’로 확장된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 사람 안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것, 상대가 호소하는 고통이 실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 순간, 완전히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제’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종교인이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듯, 우리는 보이지 않는 타인의 마음과 고통을 믿음으로써 연대한다. 물론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거대한 우주를 내 인식의 틀 안으로 ‘축소’해버릴 폭력의 위험성이 따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한계를 끌어안고 기꺼이 타인의 곁으로 다가가야만 한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그 무모하고도 다정한 노력이 바로 사랑이자 우정이기 때문이다.

 

 

  이레와 솔민의 로드트립은 종착지에 다다라서도 상대방을 완벽히 개조하거나 자신의 세계관으로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분명 여정의 시작점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상대의 세계관에 완전히 동의하거나 항복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내 마음의 한편을 비워 '다른 사람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

 

 

  태양 아래 올리브는 전개 속도가 다소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느린 걸음걸이 속에는 우리가 평생을 두고 씹어 삼켜야 할 묵직한 질문들이 숨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 앞에서 우리는 도망치기 쉽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돌바닥임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고통이 진짜임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레의 씩씩한 걸음을 떠올려 본다. 

 

  나 역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뿌리내린 이 척박한 땅에서, 내 곁에 선 타인에게 작은 틈을 내어주는 다정한 올리브나무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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