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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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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1,903회 작성일 24-07-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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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종종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글을 전달하고 할 때, 진정성을 담으면서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적당할지에 대한 고민에 종종 빠지곤 한다. 그 어떠한 적정선을 찾는다는 것은 분명 어렵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고려를 해보기도 하고, 감정이 평온한 상태에서 생각을 다시금 곱씹어 보며 단어. 표현을 다듬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종종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하면, 어떻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 하길래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점과 함께 과연 인생은 나 홀로 나아가는 외로운 것인가는 의문과 함께 상대방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뇌 속에 갇혀 사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은 역시나 나 홀로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몸 뚱어리라는 육체에 갇혀있는 뇌는 외부로부터 시시각각 변하며 전달되는 자극에 반응 그리고 상호작용하여 다른 사람과 구분이 되는 나만의 자아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제외한 (내 육체가 아닌) 다른 객체를 이해하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는 것 역시 그러하다. 내게 다가오는 자극이 그대들에게 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극이 동일할지언정 내 안의 뇌가 만들어 내는 오감이 그대들과 같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그렇다. 흥미롭게 생각할만한 것은 지금의 나와 어제의 나 역시, 계속 변하는 외부의 자극에 맞춰 내 안의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를 가장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나 조차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란 어려울 수 있다. 그러하다. 내일의 나를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 게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심지어 계속해서 변하는 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대방과 궁합이 잘 맞고 천생연분 같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상대방과 합이 맞지 않는 것으로 불안하거나 초조해 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변할지 예상할 수 없게 무작위로 변하는 우리 사이에는 마찰을 빚어 잡음이 일어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타이밍이 맞아 조화로운 순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서로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다소 온기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나 혼자서 외로이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자아는 홀로 걸어가는 순간 순간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수 많은 손을 타면서 만들어진다. 나의 모습은, 그 시절과 상황에서 나와 상호작용하던 사람들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 지나 당시 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내가 지금 보인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과거에 받은 자극이 머물러 있기에, 인생을 홀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외롭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거니는 중에 혼자라는 이유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기 어렵고 독립적인 객체이지만 상대방의 자아가 형성하는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하나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각상처럼 세월이 지남에도 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기에 상대방의 내뱉는 말에 상처받을 이유도 지나치게 슬퍼할 이유도 없다. 지금의 나 역시 그에게 물들어 그처럼 변할 수 있으며, 반대로 상대방은 나로 하여금 내일의 그의 모습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생이란 각자도생이라고 혹은 이기적이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우리는 서로 들여다보기 어려운 각자만의 세계에서 걸어 다니는 도중 서로의 세계에서 우연히 마주친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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